외국인으로서 독일에 산다는 것

by 봄봄

아침에 출근하다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외국여자가 나에게 길을 물었다.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여주면서 여기로 가려고 하는데 어떤 정류장에서 내리면 되는지 구글링을 해달라고 했다.'핸드폰이 없나보다...'하며 길을 검색해주는데 여인이 말한다.

"저쪽에서 독일인에게 길을 물었는데, 나를 상대도 안해주더라고-

독일어로 한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았어-" 라고.


나보고 어느나라에서 왔냐며 독일인들은 정말 kalt하다, 웃으면서 예의바른듯 행동하지만 뒤에서 칼을 꽂는다, 라고 말했다.

그냥 웃어넘기며 길을 알려주고, 독일인들 대체적으로 친절한데 오늘 좀 이상한 사람이 있었나보다고 하니,

"Nein, Schwester..."란다.


독일에 꽤 오래 살았다는 그녀가 왜 나에게 그런말을 하는지 나도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어서, 기분이 뭔가 씁쓸 혹은 이상했다.


약 3년간의 독일생활 동안, 이런 저런 기회로 독일인들과 부대낄 일들이 많았다. 초반에는 나도 정말 그들이 차갑다고 생각했다. 친절한데 친한 느낌은 아닌...?

1년을 알고 지내고 늘 나를 도와주는 독일인 친구보다, 오늘 만난 말 통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한국인이 더 친근하고 반가웠다.

지금도 독일인들이 한국인에 비해서는 좀 차갑다고 느끼긴 하지만, 독일에 갓 도착했을 때처럼 그게 서럽고 슬프진 않다. 그들이 나의 문화와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나도 그들에 대한 몰이해와 언어로 인한 격차로 많은 오해를 했었으니까.

독일인이 한국에 와 살면 여러가지로 적응을 해야 본인이 편하게 살 수 있듯이, 한국인이 독일에 와 살때도 현지화와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하는 건 당연하다.

초반엔 낯선 환경 속에서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고, 독일어 억양조차도 나를 혼내는 것 같고, 빵집에서 빵하나 주문할 때도 얼마나 가슴이 두근대던지...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영어를 못해도 그렇게 긴장이 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내가 느낀 북미사람들은 좀 오바하더라도 상대가 민망하지 않게 생글거리고, 명랑한 친절을 베풀었다. 유머감각은 덤. 그래서 내가 외국인으로서 어설픈 영어를 해도 날 무시한다거나 하는 느낌이 든적은 사실 많지 않았다.


독일은 다르다. 사람의 성향이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상대적으로 영미권보다는 훨씬 배타적인 느낌이다. 굉장히 예의바르지만, 뭔가 교육을 잘 받은듯한 예의바름이랄까? '예의바름 vs 친절함' 은 전혀 다른 개념이란 것을 이곳에 와서 배웠다. 예의바르지만 차가울 수 있다.






우연히 만난 이탈리아 여인의 한마디로, 그녀가 타국에서 겪었을 일들이 어렴풋이나마 상상이 되었다. 독일인 중 그녀가 만난 사람들이 어쩌면 특히 차가웠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경험치란 제각각 다르니까.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이곳에 적응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답답함이 마음에 꽉 차있을 땐 나도 그랬다. 부정적인 말들만 뱉었었다.

그래서 잠시의 그 순간이 나에게 오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국에서 살 때 사람들이 "넌 외국가면 잘 살 것 같아.", "넌 외국계회사 다니면 어울릴것 같아."란 말을 많이 했었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고,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그랬을까.

나도 내가 그런줄 알았다. 외국가서 살면 잘 살줄 알았고, 외국가서 살면 뭔가 더 자유로울 줄 알았다.

글로벌-하다는 말이 왠지 멋지게 보였던 시절.


하지만 고백하건데 난 정말 '외국에서 산다는 것'이 뭔지 눈꼽만큼도 몰랐었다.

외국살이라곤 대학때 교환학생 하러 미국 다녀온게 다였던 나는, 학생으로서 한정된 시간동안 학교에 다니다 오는 것과, 타지에서 밥벌이하며 뿌리를 내리고 사는게 얼마나 다른지 아무런 사전지식도 경계도 없었다.

그리고 그 '외국'에 얼마나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외국=미국"이 아닌데, 난 그냥 미국을 외국이라 생각하고 '독일도 서양이니까 미국이랑 비슷하겠지...'란 얼토당토하지 않은 생각으로 독일에 왔다가, 그야말로 제대로 두드려 맞으면서 적응해온 것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내가 지금 아는만큼 그때 알았더라면 같은 선택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독일은 장점도 많은 나라다. 하지만 그게 어디든, 타향살이 초반에 감내해야하는 어려움과 노력, 불안함과 답답함을 나는 모르고 그냥 왔다. 적응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누구도 나에게 경고하거나 가르쳐주지 않았다. 학교가 아니니 그냥 몸으로 부딪혀야했고, 그 결과 이제는 좀 정착한 것 같다. 쉽진 않았다.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원칙-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이 있다는-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적어도 노력도 안하고 공으로 뭘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3년 전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말할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어. 한국에서 힘들었던 부분은 여기서 해결될 수 있지만, 가치관,문화, 언어 등 삶의 프레임이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게임의 룰을 익히는 기간 동안 마음 단단히 먹고 적응해나가야 할거야. 고향에서는 그 프레임을 어른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으며 어린시절 뛰어놀며 배웠다면, 이 곳에서는 20~30대의 어른 나이에 창피함은 잊고 난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해야 해. 상처를 받아도 퉁 튕겨내고, 이 나이에 내가 왜 이런걸...이라는 쓸데없는 자존심도 버리고 실수 연발하는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편견없이 모든 자극을 받아들여야 해. 그렇다고 너무 절박한 심정으로는 말고, 그야말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두근대는 기대와 실망에 대한 여유까지 가진다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거야. 새로운 길을 선택한 너를 응원해!"


독일행을 결심했던 당시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언니가 있었다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싶다. 다 지난 이제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하지만 돌아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가 약 10년동안의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도, 누구도 나에게 앞에 돌이 있으니 피하라거나, 물이 있으니 조심하라거나 해주지 않았다. 맨땅에 헤딩했던 건 그때도 마찬가지.

그 시간들을 지나니 맷집도 생기고 단단해지고, 철도 들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외국생활 1단계 정도는 클리어한 것 같은 지금, 3년 전 뭣모르던 나보다는 한단계 올라선 느낌이다. 앞으로 다른 나라에 가서 또 새로운 시작을 해야한다고 해도 처음보다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마인드로 앞으로 또 열심히 살아봐야지. 이제야 좀 '글로벌 마인드'가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고군분투하고 계실 한국인 분들 모두, 잘 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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