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한번은 쓰고 싶었던 테마인 독일 직장생활-휴가편이다.
인터뷰 볼때도 휴가계획을 물어보기에 응? 하긴 했는데 그때는 크게 신경을 안썼었다.
그런데 반년 넘게 독일회사를 다녀보니, 휴가란 독일인에게 연간계획을 세워 실행할만큼 중요하고도 중대한 일이었다. 특히나 매일 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대표부터 연간 휴가일정, 혹은 2년 후 휴가지까지 정해 점심이면 휴가에 대한 대화를 자연스레 하고, 어디가 좋다, 어디는 별로더라 하는 서로간의 의견도 나누고 하는 모습이 처음엔 참 낯설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때 휴가를 어디로 간다고 말하기가, 특히 기간이 긴 경우엔 왠지 죄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직장동료들이 각자 맡은 일이 바쁘다보니 누군가의 휴가로 백업업무가 늘어나면 그것은 곧 내 야근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말하는 사람도, 옆에 동료도 휴가가 불편한 주제였다. 같은 이유로 아파도 웬만하면 출근해서 얼굴 비추고 조퇴하거나, 그냥 참고 약과 링겔로 버티며 주어진 업무를 기간 안에 끝내는게 쉬고 나와서 산더미같이 쌓인 업무를 감당하는 것보다 나았기에 병원을 참 자주도 다녔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남들도 다 그랬고, 한번씩 지쳐서 볼멘 소리를 하면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난 이렇게까지도 해봤어', '우리회사는 더 심해', '너 여기 와서 일해볼래? 내 앞에서 그런 소리 하지마라..' 등이었다.
그런 말들이 듣기 싫으면서도 나 역시 다른이가 불평을 할때, 내가 일하는 환경보다 여유가 있는데 불평하면 속으로 '난 더한데..'라고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업무가 사람이나 건강보다 우선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자연'스러웠었다.
이 곳에 와서 내가 한국에서의 경험을 말하면 다들 난색을 표한다.
내가 한번 독일은 온 국민이 일년 내내 휴가를 가는 것 같다고, 항상 누군가는 휴가 중이라고 했더니 그 말을 들은 독일친구가 그렇게 푹 쉬어야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능률이 오른다고 했다. 그렇게 휴가가고도 업무시간은 정말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지금 독일은 경제대국이라고...
회사 상사는 신입직원은 업무에 익숙하지 않으니 실수를 하거나 허둥대더라도 차근히 가르쳐주며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프면 다른 사람 전염되지 않게 쉬어야 하고, 병가를 내도 연차로 대체되지 않는다. 휴가지에서 병이 나서 하루도 제대로 못놀고 돌아왔다면, 원래 냈던 휴가는 전부 반환 처리되고 병가로 대체된다. 내 연차휴가가 사라지지 않는다.
2주 이상의 장기휴가는 몇개월 전 항공편 등이 저렴할 때 미리 부킹 후 회사에 사전에 일정을 공유하고, 내가 어딜가는지 누구랑 가는지 왜그렇게 길게 휴가를 내야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물론 여행지가 어디냐 정도는 여행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물어볼 수 있지만, 보통은 묻지 않고 휴가가 승인된다. 여기도 일이 바쁜 기간은 피하고 동일 업무를 하는 동료의 휴가일정은 피하지만, 상식선에서 당연히 지켜야할 예의 수준이지 휴가를 내는 것 자체에 대한 죄책감은 아무도 가지지 않는다.
근로자와 사용자의 소송에서 대부분 근로자가 이긴다는 독일에서, 왜 그런지 이들의 권리 주장 및 꼼꼼히 찾아쓰는 태도에서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오버타임도 거의 없다. 계약서상의 주 근무시간을 월 ~목에 거의 채우면 금요일에는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고 2~3시쯤 집에 가기도 하고, 매일 근무시간이 끝나면 10분도 더 일하지 않고 칼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와 내 주변사람이 다니는 회사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그렇지 않은 회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서 석사를 마치고 취업하거나, 박사를 하거나 한 독일 친구들도 모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봐서는 일반적인 분위기는 이렇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처음엔 좀 너무 노는 것 같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싶기도 하고 휴가가 30일이라니 좋긴한데 정말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나라에서 근로자의 권리 보장 및 퇴근 후 시간의 보장은 정말 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을, 한달을, 1년을 '계획'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베네핏이다. 한국직장 근무시에는 오늘 저녁식사 시간도 계획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본의 아니게 약속을 깨고 미안하다고 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고, 나중엔 그냥 평일엔 약속을 안잡았었다.
대신 이렇게 모든 사람이 휴가를 사용하다보니 무슨 서비스나 약속한번 잡으려고 하면 2주,1달을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예사고, 그래서 뭔가 특이사항이 발생했을때 빠른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다. 그것때문에 참 짜증도 많이 났는데, 근로자로 일해보니 이제 이해도 간다.(그래도 한국서비스 수준 생각하면 여전히 견디기 힘든 부분이 다수 존재...) 뭐 하나 해지하려면 콜센터 30분 대기를 한다거나, 해지는 최소 계약만료 3개월 전에 해야한다거나, 동사무소 약속 잡으려면 1달 전엔 약속 잡고 방문해야한다거나, 가구 주문하면 2주~1달이 배달에 소요된다거나 하는 것들. 여전히 독일 살면서 그런 것들은 힘들지만, 좋은게 있으면 나쁜게 있는거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좋은 것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다.
이들이 휴가를 중요시하고 1년을 계획하고, 본인의 휴식을 소중히 생각하며 자신을 존중하는 모습은 나도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휴가일수나 휴가쓰는 방식도 그렇지만, 자신의 여가와 휴식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끼며 시간을 보내는 사고방식이 부럽다. 30년 넘게 살아온 한국이기에 마인드를 바꾸는 것은 힘들겠지만, 조금씩 스며들듯 바뀌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어떻게 하면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알차게 채워볼까하는 고민을 하는 것은, 비단 휴가뿐 아니라 인생을 계획하는 일도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