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 금요일 저녁, 빗소리, 비냄새..좋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평안한 금요일 밤 in Aachen

by 봄봄

금요일 밤, 밥 먹은 거 정리하고 소파에 누워 쉬자니 '타닥,타닥' 창문 두드리는 소리.

비다.

Rainy 아헨답지 않게 최근엔 비가 별로 안왔는데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저녁에 비가 부슬부슬 오니 괜시리 기분이 좋다.



오늘은 금요일. 매일 '수업받기 힘들어~'를 외치던 이번 주인만큼, TGIF 소리가 절로 나오는 금욜이었다.

신랑이 아침부터 조교에 이케아에 탁구에 너무 바쁘게 보내서, 밥 맛나게 해줄 생각하며 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저녁메뉴는 항상 수업끝나고 집에 오면서 고민한 후, 레시피 찾아 집 도착함과 동시에 스타트~!한다.

신랑도착까지 한시간이 남아, 해물카레 빠에야와 소세지볶음을 후딱 만들어 어느새 도착한 신랑과 나란히 앉아 먹는다. 시어머니께서 해주신 밑반찬까지 깔아놓으니 식탁이 풍성. 신랑은 너무 힘들었는지 두 그릇을 앉은 자리에서 뚝딱. '맛있어~'를 연발하며. =)

사실 원래 요리를 잘 못해서 예전엔 신랑이 맛 없어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이젠 어느정도 실력 (?)이 느니까 나도 먹는 재미, 함께 먹는 사람이 맛나게 먹어주는 재미에 요리도 뒷정리도 즐겁다.


요래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당연한 요즘이, 문득 참 행복하다 느낀다.


요즘은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학원 갈 때와 달리 여유있게 이 가게 저 가게 인테리어, 메뉴도 살펴보고, 사람들 표정도 보고, 서점에 가서 잡지도 뒤적여보고 하는데, 그 때 마다 이 도시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다. '이런 가게가 있었어?담에 와서 샌드위치 먹어봐야지.'라던가 '와 저 고양이 그려진 그릇 참 이쁘다. 담에 문열 때 와서 사서 신랑 밥 이쁘게 담아줘야지.'라던가.


신랑과 집에서 식사 같이 하고 각자 휴식을 취하다 내리는 빗소리에 창문을 여니, 옆 공원의 나무 잎사귀 젖은 냄새, 풀냄새, 비냄새...에 상쾌하다. 심호흡을 해본다. 이런 공기를 흠뻑 들이마실 수 있다는게 행복하다. 맛있다 참, 공기가.

올려다본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5월 3일, 처음 독일로 오던 날도 공항에서 아헨으로 오는 길 밤하늘에 별이 쏱아질 듯 뿌려져 있었는데...

그대로다. 여전하다.

앞집 정원의 작은 연못의 물 흐르는 소리에 어느 시골 펜션에 와 있는 편안한 기분이다.

이 여름 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한국이었다면 목이 쉬도록 외치고 있을 시원한 개구리 울음소리.

나에게 여름밤은 개구리 울음소리가 깔려줘야 최고니까. 가족들과 그 소릴 배경삼아 산책했던 즐거운 나날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러다가 문득, 회사생활 할 때의 금요일 밤이 떠오른다. 그날도 야근을 하거나, 주중 내내 야근해 피로에 쩔어서 바로 집에 가서 쉬다 자거나, 일주일의 노동을 보상받을 심산으로 서울 시내 맛집, 번화한 거리들로 나서거나...거기서 술 한잔하며 친구에서 힘든 마음을 털어놓거나, 까페에서 넋두리를 하거나...


'불금'이라며 온 몸을 불살라 놀지 않으면 내 불쌍한 청춘이 어느새 날아갈까봐, 불안하고 아까운 마음으로 새벽까지 핫하다는 동네들을 이리저리 쏘다니기도 했다. 회사 사무실 분위기와 달라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곳일수록, 더 좋았다. 회사일을 잊을 수 있고, 일탈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런데 그런 장소를 찾고 애써 이동한 곳에서도 회사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는 것 자체가, 결국은 회사에 더 매여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지금에 와서는...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일상에 너무 아무것도 없잖아...'란 생각에 결국은 밖으로, 밖으로 돌아다녔던 것 같다. 비교적 모범생 스타일에, 특별히 놀기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나도 그랬던걸 보면, 그때 참 내 삶이 도피처가 필요할만큼 메말라있긴 했나보다.


지금은 집에 오면 하루를 곱씹으며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하는 일은 없다. 그냥 내가 매일 걷는 길이 이쁘고, 맑은 공기와 그늘을 주는 길가의 큰 나무가 고맙고, 내리는 빗소리와 좋아하는 음악소리를 함께 들으며 누워있으면 참 좋다...


그냥 오늘 밤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봤다. 나에게 오늘이 있었음이, 내일이 주어짐이 감사하다. 과연 내 인생에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볼 여유가 생김에 감사하다.

열심히 살았지만 내 영혼을 돌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는 게을렀던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이렇게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것, 평안해지는 것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나다운, 혹은 궁극적인 행복을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쉼표,
그리고 차분한 걸음.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한구석엔 쉼표와 여유가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빗소리 들으며 주절거려봤네...^^

아래는 너무 예뻐서 가져온 비 사진.

자연은 진리다.♡

이제 자야지. 모두들 편한한 밤 되시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