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주부가 되고, 먹을걸 직접 해먹어야하는 상황이다보니 요리와 살림에 관심이 많이 생긴다. 원래 요리 및 살림에 일자무식이었던 탓에 엄마는 나 시집갈 때 걱정도 많으셨고, 공부나 일하는거, 즉 책상머리에서 하는 거 이외의 모든 일에 어리버리했던 나를 보며 동생들도 '언니 정말 괜찮겠냐', 며 걱정을 했었지..
심지어 예전에 시골에 주말농장을 할때 가족 모두 밭에 콩을 심는데, 아빠가 이랑을 따라 콩 심을 자리를 막대기로 콕콕 찍어주시면 따라가며 오리걸음으로 콩을 심던 그 날도, 동생들은 2~3이랑을 끝낼 때 나는 이랑 1개를 반도 못 마쳤었다. 그러자 아빠께서 오시더니 하시는 말, '너 뭐하고 있니...?'

근데 중요한건, 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거..그래서 손 빠른 동생들은 늘 나에게 늑장 부린다, 엄살 부린다며 뭐라고 했었다. ㅠ_ㅠ 워낙 안해서 그런건지, 원래 그렇게 몸으로 하는 걸 잘 못하는 건지 몰라도 노상 그런얘길 듣다보니 어느새 나 스스로 운동, 요리 등 그 외 여러가지 일상생활에서의 빠릿빠릿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두려움에 어느 부분 포기를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운동은 되게 잘 했었는데...어느새 이렇게 된건지...ㅠ_ㅠ
그런데 이 곳 독일에 와서 더이상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밖에서 사먹는 것도 여의치 않다보니 스스로 하나둘씩 해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시그니쳐 메뉴'라고 자랑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제 한국 요리가 대부분 간장, 고추장 있으면 거의 다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되고,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먹어보고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니 뿌듯하다. 원래 김치찌개, 라면, 볶음밥 외엔 자신있게 할 수 있었던 요리가 없던 나이기에, 요리 잘 하시는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우리 신랑은 초반에 좀 실망했을거다..ㅎㅎ
하지만 요즘은 몇 달만에 요리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며 칭찬해주니 기분도 좋고, 뭔가 만들어 함께 먹어줄 사람이 있다는게 감사하다. 어찌보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은 가장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아닌가 한다. 예컨데 소중한 사람과 함께 앉아 정성스레 준비한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은.
이렇게 하나하나 해나가고 냉장고도 살피고, 뭐 부족한거 사올 건 없나 한번더 돌아보게 되고,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다 알게되니 내 남편 몸에 좋은 것만 먹이고 싶어 장볼 때면 유기농인지 항상 확인하게 된다.
보관상태에 따라 재료의 수명이 결정되니 보관법, 정리법도 고민하게 되고, 각종 어플과 잡지, 인터넷 서핑을 통해 레시피를 비롯 재료의 영양, 몸 어디에 좋은지, 균형잡힌 식단은 뭔지, 그리고 이쁜 플레이팅은 어떻게 하는지까지 관심의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된다.그래서 잡지도 찾아보고 책도 보고 배운걸 시도도 해본다.
그러면서, 그 동안 내가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런 '생활'적인 부분에서 발전하고 요령이 생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그동안 참 '사는' 것에 무심했구나. 먹는 것, 입는 것, 내 주변 정리, 내 사람, 하늘, 나무, 공기...이런 것들에.
늘상 눈 앞에 사다리나 목표에 더 집중하고 소위 돈 될 만하거나 스펙에 도움될 일 아니면 안했던 그 때는 이런 일상은 그냥 거쳐가는 것들이었지만, 지금은 오롯이 내 하루를, 내 삶을 담담히 살아내게되고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니 충만하다.
시차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보게 된 일출 직후의 하늘도 반갑고,
내가 독일로 오던 날 신랑이 미리 사 이쁘게 창가에 놓아둔 꽃 선물이 꽃도, 신랑 마음도 예뻐서 볼 때마다 웃게 되고...
귀여운 카카오프렌즈 컬러링북 색칠하며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도 좋다.
아, 그리고 요리하면서 독일에 없어 아쉬운 한국 재료가 깻잎인데, 검색해보니 독일 계신분들 다들 길러서 먹는듯....ㅋ
테라스 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깻잎, 고추 다 길러서 먹어야겠다.
즐겨보는 레시피 어플이 '아내의 식탁'인데 이 분도 아마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재미에서 시작해 사업까지 연결시키지 않았을까 싶네...
뭐든 열정을 가지고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시간 낭비하지 않고 새로운거 배워나가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