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

인생 패스츄리와 스타벅스 제주송당점

by 김유연

여행 5일 차, 상쾌한 기분으로 마을을 산책하고 종달리를 떠났다. 오늘은 송당을 경유해 서귀포로 거처를 옮기는 날이다. 제주도 동쪽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image.png 오늘의 이동 경로. 종달에서 서귀포로, 중간중간 카페나 식당을 들리면서 내려가는 루트다.


이번 루트도 녹차밭 경유를 고려해서 구성했다. 서귀포시 남원읍의 ‘수망다원’을 들렸다가 다음 숙소가 있는 서귀포 혁신도시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 안에서 가고 싶은 카페나 빵집, 식당을 들르면 오늘의 일정이 끝난다.


가장 관심이 있던 건 송당리의 빵집이었다. 제주도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수준 높은 빵집이 많다. 인심 좋고 종류도 많은 옛날 빵집도 많고, 세련된 인테리어에 좋은 재료를 강조하는 요즘(?) 스타일 빵집도 많다. 어차피 가는 길에 있으니 송당리에서 빵을 사고 핫하다는 송당 스타벅스를 들렸다가 수망다원으로 향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송당리 빵집에서 먹은 패스츄리가 평생 먹은 빵 중 가장 맛있었기 때문이다.


IMG_0500.jpeg 근사한 패스츄리를 선사해준 '킨조 베이커리'


와사삭 부스러지는 겹겹의 패스츄리에 딱 적당한 단맛, 고소한 버터향이 환상적이었다. 서울의 유명 빵집에 결코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패스츄리의 바삭함은 여태 먹은 어떤 빵집보다도 강력했다. 제주도는 전국의 실력자들이 모여드는 곳일까 싶을 정도로 맛있는 빵집과 카페가 많다.


한번 더 들리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지만, 다른 빵집도 들러보고 싶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스타벅스 송당점이 있는 동화마을로 향했다. 정식명칭은 ‘스타벅스 더제주송당파크 R점’이다.


IMG_0524.jpeg 제주도의 스타벅스, 더제주송당파크R점


제주도에서 굳이 스타벅스를 찾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이렌오더에서만 보던 ‘제주 송당 Only 메뉴’가 궁금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익명성을 위해서였다.


카페의 익명성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건 타인과 이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안도감, 편안함 같은 것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는 거의 확실한 익명성을 보장한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배경 속에 섞이고 싶은 날이 있다.


스타벅스 송당점에 도착해 넓은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신기하게도 일반 아메리카노 메뉴가 아예 없고 리저브 커피만 주문할 수 있었다.


넓은 통창뷰 너머로는 동화마을을 산책하는 가족단위 손님들이 보인다. 대부분이 관광객들로, 놀러 온 사람 특유의 경쾌하고 가벼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작업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공간의 쾌적함을 더한다.


IMG_0534.jpeg 송당점 2층의 통창 뷰. 좌석이 아주 많다.


스타벅스는 일반적인 체인점과는 다르다. 스타벅스만큼 매장의 퀄리티가 일정한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비록 요즘은 다른 스타 카페들에 밀려 인기가 하향세에 있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언제 어디서든 편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일등 브랜드다. 언제나 일정한 음료의 맛과 방해되지 않는 음악은 탄탄한 하방을 보장한다. 널찍한 책상과 작업하기 좋은 환경, 그리고 바리스타와의 거리감도 딱 좋다. 너무 가깝지 않고,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다.


매니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카페는 때때로 부담스럽다. 따듯한 인사와 인간적인 교감으로 단골들을 만들어내는 멋진 카페들도 많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를 방문하는 나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압박감이 썩 반갑지 않다.


반갑게 인사하며 말을 걸어주시는 작은 카페 사장님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대화나 관계 맺음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타인과의 교류를 정말로 원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방법을 몰라 무서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반씩 섞여있을 것이다. 모든 일을 스마트폰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세상에서 입을 열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은 편안하지 않다. 물론 사교성 넘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 같은 타입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사회생활이 힘들 정도로 사회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만이라도 사회성이라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소통을 위한 룰, 암묵적인 규칙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타벅스의 서비스는 훌륭하다. 어느 지점에서든 사이렌오더는 완벽하게 작동한다. 디카페인 원두로 변경하거나 퍼스널 옵션 변경도 대화 한 마디 하지 않고 끝낼 수 있다. 도착하는 음료도 주문한 그대로로 완벽하다.


바리스타의 친절함도 적정선에 있다. 개인대 개인으로서 만나지 않는다. ‘맛있게 드세요’와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철저한 비즈니스적 소통으로 남는다.


이런 특유의 거리감이 좋아 제주도에서도 스타벅스를 찾았다. 그리고 제주도에서의 5일간, 지금까지 들른 모든 카페 중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곳의 룰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맛도, 공간의 규칙도. 새로운 것을 탐색하기 위해 경계하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었다. 글도 잘 써졌고 책도 잘 읽혔다.



IMG_0531.jpeg 스타벅스 송당점 1층에는 거대한 키네틱 아트가 전시되어 있다.
IMG_0527.jpeg 공간이 넓고 좌석 간격도 넓어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다.


하지만 ‘이미 아는 것’만 반복한다면 여행을 온 의미가 없다. 이 순간의 편안함을 즐긴 후에는 다시 용기와 도전이 요구되는 여행 속으로 복귀해야 한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탐험하는 일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휴식시간을 가졌으니 이제는 모르는 영역을 탐색하러 가야 한다. 지금은 여행 중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참 편히 쉬었다. 역시 대기업의 쾌적함은 따라갈 수가 없다. 언젠가 나도 일관된 쾌적함을 제공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상상을 해보며 떠날 준비를 한다. 다음 행선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영세한 밥집과 카페가 될 것이다. 이 커다랗고 깨끗한 공간과의 대조가 각각의 맛을 더해 줄 것이다. 그 또한 경험의 묘미다.


혹시나 이 부근을 들를 사람을 위해 덧붙여보자면, 스타벅스 송당점은 본사에서도 꽤 밀어주는 지점이다.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스페셜 음료나 케이크가 많다. 공간이 넓고 인테리어가 독특해 체인점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오전에 방문하면 적당히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근방의 ‘마스터밀크 송당’에서 유기농 우유로 만든 치즈나 요거트도 구매할 수 있으니 세트로 묶어서 구경하기도 좋다. 마녀배달부 키키 콘셉트의 코리코카페, 지브리 기념품을 취급하는 도토리숲도 마니아층에게 인기다. 평화마을 공원도 무료입장이라 식사 후 편안하게 걷기도 좋다. 제주 여행 중 쾌적한 편안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제주도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구독해 두시면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IMG_0578.jpeg 평화공원 산책로에서 바라본 스타벅스의 전경.
IMG_0582.jpeg 멋진 인공폭포도 있다.
IMG_0575.jpeg 아이들을 위한 작은 기차도 운영한다. 꽃이 피면 더 예쁜 풍경이 연출될 것 같다.
IMG_0595.jpeg 마스터밀크 송당점에서는 제주 성이시돌목장의 유기농 우유, 요거트,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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