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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19. 2020

커피 중독자의 두통

고등학생 때부터 매일 커피를 마셔 왔다. 이제는 아침을 시작하려면 진한 블랙커피 한 잔이 필수다. 심지어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다. 카페인을 들이켜야만 작동하는 커피 중독자의 삶. 오늘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걸 커피로 잠재웠다.


한 번은 설명회를 간다고 아침 일찍 나간 적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오후 3시까지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카페에서 두통을 해소하고 나서야 커피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한참 전부터 중독되어 있던 거다.


결고 건강한 습관은 아니다. 카페인을 섭취한 상태가 디폴트(default), 기본 설정 상태니 커피를 마신다고 딱히 능률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마셔야만 기본이라도 할 수 있는 것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커피에 의존하게 되어버렸을까. 한때는 나도 이 쓴맛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을 텐데.


아주 어렸을 땐 중학생 언니들이 마시는 캔커피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달한 캔커피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커피는 무조건 쓴 게 좋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도 있지만, 그냥 쓴 게 더 맛있다. 어디선가 사람은 본능적으로 쓴맛을 싫어한단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 커피의 쓴맛을 즐기는 건 본능이 아니라 학습, 많이 마셔서 길들여진 것일 거다.


나는 아마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갓 입학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졸린 정신을 깨우고 수업을 들으려고. 어떻게든 선생님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커피의 힘을 빌렸다. 보온병에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타서 싸가지고 다녔다. 등교 후, 선생님이 아침 조회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잠을 깨는 혼자만의 커피타임을 가졌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입시 때문에 커피에 입문하게 되지 않았을까. 재수학원 쓰레기통엔 핫식스와 커피 공병이 산처럼 쌓여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카페인 중독으로 인한 두통과 함께 살아갈까. 카페인 중독은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 같다. 잠을 줄이고 억지로 정신을 깨워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일상적이기에 더 처절한 쓴맛.


이제는 맛있어서 먹지만은 한땐 각성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씁쓸하고 때론 조금은 시큼한 아메리카노. 누군가에겐 가장 효과적인 두통약. 그러나 때로는 커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꾼다. 어떤 부담도 의무도 없이, 무언가에 쫓기는 일도 없이,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이. 그저 느긋하고 여유롭게. 두통도 없이, 유유자적하고 싶어라.  



커피, 2020, 디지털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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