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복이 별거더냐

by 온가을

아빠는 식구 많은 가난한 집에서, 순한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먹고 싶은 건 많았지만 찜해두고 군침만 흘렸던 어린시절을 보내서인지 먹는 걸 참 좋아한다.

몸에 좋든 안 좋든 맛있으면 오케이.

맛난 거 손에 들고 입에 한가득 담으며, 행복해하는 얼굴 생각하면, 어린 아이같아 웃음 나는 순수한 사람이다.


결혼해서는 몸에 좋은 식재료를 고수하는 외할머니 딸인 엄마와 30년 가까이 살게 되어, 양껏 인스턴트를 먹고 살진 못했다.

고기를 안 먹는 엄마는 외할머니께 물려받은 음식에 대한 철학이 확실했고, 나도 초등학생 땐 '햄버거가 무슨 맛이지?'하고 살았다.

배달음식도 우리 집에선 1년에 1-2번 정도가 다라 중학교 가서는 친구들이 일주일에 몇 번씩 배달 먹는다길래 신기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렇게 음식에 철저한 우리 집 식탁에 안 올라오는 재료가 있다면 바로 햄이다. 외할머니는 물론, 엄마도 햄, 소세지, 이런 가공육을 취급하지 않아서 그 맛을 모르고 자랐다.

우리 집 김밥 역시 햄이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가 약속 있던 날, 아빠가 찬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 스팸을 꺼내며 오빠와 나를 식탁에 앉혔다.

"이거 구워줄게."하며 실은 아빠가 제일 설레하던 얼굴.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정도로 아빠는 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어제는 아빠가 지친 목소리로 김밥 먹자고 하길래 엄마가 김밥을 포장해왔다더라.

늘 그렇듯이 엄마는 햄을 빼고 먹는데, 빼놓은 햄을 아빠가 먹자

"아이고, 뭘 또 드셔~"

아빠는 잠시 멈칫하고는 말했다.

"햄을 힘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중이야."


이 말 한마디에 빵 터져서 오늘 엄마와 통화하며 한참 웃었다.

햄 한 조각이 힘이 된다니 너무 소박하고 귀여워서 글을 적으면서도 미소 짓게 된다.


아빠의 잊지 못한 첫사랑은 엄마와 결혼해 살다 보니 30년가량 참아온 햄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아빠가 지쳐 보일 땐 햄을 건네줘야겠다.

햄이 힘이 될 수만 있다면 당연히 먹어야지.


누군가 당신에게 햄을 건넨다면, 마음껏 햄복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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