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둔 숙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취 4일 차

by 온가을

엄마 아빠가 마저 보낸 택배를 받았다.

큰 택배들을 뜯어보는데 내 물건들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신발도 4켤레나 되고 옷들도 꽤 많아서 본가에 내 물건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본가의 텅 빈 자식들의 공간을 보며 쓸쓸해할 엄마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 눈물이 났다.

우리들을 다 떠나보내고서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세월이 무상하다고 느낄까 봐 슬퍼졌다. 엄마 아빠가 혹시라도 슬퍼하거나 쓸쓸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물론 택배에 가득한 내 짐들을 보자 집을 떠나온 것이 확실하게 체감되면서 외로워졌다.

내겐 유독 둥지를 떠나는 게, 가족과 이별하는 게 어렵다.


당장은 이별과 외로움에 눈물 흘리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 마음고생한다. 당연하게 쥘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놓쳤다.

학창 시절동안 나는 현재에서 행복했던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더 행복할 미래를 떠올렸다. 하지만 과거에 떠올렸던 행복한 미래와는 다른 상황에, 나는 놓였다.


인생의 과정과정마다 주어지는 숙제를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살면서 반복해서 주어진다는 엄마의 말은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내게

왜 자꾸 미래만 보고 있느냐고, 지금의 너를 보라고, 현재를 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 현재를 살아라 ‘라는, 내가 추측한 현시점의 인생 숙제는 내가 삼수를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성적과 서류를 준비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런 결과를 맞이했을 때, 엄마는 너를 여기로 보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나를 미래에 성공시키기에, 내가 원하는 미래를 얻기에 이곳이 적합한 곳인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성공이라는 뜬구름보다는 나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얼마 전까지 내가 다니게 될 대학을 얕봤고, 엄마아빠한테 상처를 줬고, 원하지 않았던 결과에 크게 낙담했다. 누구도 모를 미래를 이미 본 것처럼,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 쓰는 이 시점엔, 미래가 지금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확신하는 게 허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될 텐데 보이지 않는 미래만을 붙잡고 애쓰며 살아갔던 게 참 어렸다.

이러다간 찬란했다고 느끼는 과거마저 불행하다고 치부하는 현재에 묻힐까 걱정된다.


나는 연고 없는 지역에서, 집 떠나 혼자 살며, 재수 끝에 원하지 않았던 대학 다니기를 도전한다.

다독이고 버텨내야 할 마음의 무게가 무겁지만, 흘러가고 있는 인생의 방향을 인정하고 현재의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다. 미래에 의존하지 않은 채로.


시작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자, 내가 가지지 못한 것보단 가진 것에 감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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