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가까운 집

by 자유지은


단독주택

방 2개,

욕실,

거실 겸 부엌,

감나무가 있는 마당...


서귀포항, 천지연폭포까지 걸어서 10분

서귀포(구)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5분



내가 제주에서 처음 구하던 집의 조건에 '그런대로는 잘 맞는' 집이었다. 바다를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부담 없이 산책 가는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으면서도, 서귀포 시내권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편리했다. 단독주택이라 층간소음에서 해방되었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괜찮은 집이었다. 서울에서 한 번도 단독주택에 살아본 적 없는 내게, 작은 마당과 감나무가 있다는 것조차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가장 큰 반전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집을 보러 갔을 때는 전에 살던 사람들의 가구와 짐들로 인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이사 나간 후에 간단한 청소를 하려고 가봤더니 정말로 '헉' 소리와 '한숨'이 번갈아서 나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환기를 전혀 안 시키며 살았던 모양인지 벽에 상당히 많은 곰팡이가 있었고, 벽지가 흠뻑 젖어서 허물 벚겨지듯이 떨어지기도 했다.


'맙소사,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이런 집인 줄도 모르고 계약했다니...'


현장을 확인하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얘기를 하니, 그 전에 살던 사람들 흉을 보면서 도배는 새로 해주겠다고 했다. 장판은 바닥을 닦으면 되니 그냥 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살펴보니 이전에 살던 세입자는 대체 몇 년이나 청소를 안 했을까 싶을 정도로 집 곳곳이 더러웠다. 심지어는 거미줄도 있었고, 방 안쪽에 흙먼지가 그대로 굴러다녔다. 심지어 작은 창고 안에는 각종 벌레들의 시체와 담배꽁초까지 있었다. 내가 이 집을 보러 갔을 때는 분명 '한 가족'이 머물고 있었다. 너무 구석구석 들추어보는 건 결례인 것 같아서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던 내 탓도 있었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이 정도로 더러운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더러운 건 청소를 하면 된다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눈 뜨고 산 이후로 이렇게 많은 곰팡이는 처음 마주하는 것이어서 너무 당황스럽고 이상한 공포심마저 들었다. 벽지를 새로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이미 벽지는 여러 겹 덧대어 발라져 있었다. 제대로 시공한다면 기존에 있는 젖은 벽지를 다 떼어내고 곰팡이를 제거한 후에 초배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줄 리 만무했다. 나는 다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도배를 취소했다. 대신에 내가 이 집에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뭐라고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미 나는 연세를 입금했고 되돌릴 수 없었다. 곰팡이가 핀 벽지 위에 또 한 겹의 벽지를 덧바른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인데 나는 이미 다 봤고, 숨 쉴 때마다 곰팡이균이 내 기도를 파고들 것만 같아 께름칙하였다.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또다시 '무대뽀' 정신이 발동했다. 그냥 나 혼자라도 이 넓은 집을 '고쳐' 살기로 한 것이다.





keyword
이전 05화제주에서 집 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