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어, 지은이니? 웬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응. 엄마, 나 제주도로 이사 왔어." 나는 옆집 강아지 얘기처럼 대수롭지 않은 일을 전하듯 말을 뱉었다.
"뭐? 제주도?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어떻게 거기로 이사를 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수화기 너머에 있는 엄마의 목소리톤이 한 단계 높아졌지만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제주도에 살러 왔다고."
"얘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네가 거긴 왜?"
"그냥 한 번 살아보고 싶어서 왔어."
"여행이 아니라 아주 살러 갔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하던 일은 어쩌고?
"그만두고 왔지."
"여자애가 혼자서 겁도 없이 거기가 어디라고 가니? 어떻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결혼해서 가는 거라면 또 모르겠다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통화가 길어질수록 으레 예상했던 잔소리가 시작됐지만 응수해봐야 도돌이표 같은 말들만 반복할 게 뻔했다.
"아무튼, 여기 온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너무 좋아. 시간 있을 때 놀러 오라고."
"얘, 근데 어떻게 너 혼자 그 먼데까지 갈 생각을 다 했니 그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제주도가 어디 외국도 아니고 비행기 타면 한 시간인데 뭐가 멀다고 그래. 아무 일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고... 정말 내 배로 나은 딸년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다르니? 아무튼 위험하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나중에 또 전화해라."
제주에 와서 '집 구하기'라는 큰 고비를 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께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서울에서도 부모님과는 떨어져서 자취를 했고, 나의 제주이민 계획은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리 얘기했다가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발목이라도 붙잡힐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서른 살도 넘은 딸내미가 결혼도 안 하고, 그것도 혼자서 제주에 내려가 살겠다는데 어느 부모가 박수 치며 보내줄 수 있을까? 어려서부터 어지간한 일에는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 를 가훈처럼 여기던 부모님이지만 결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실제로 내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시집가라'는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라고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당시 나는 제주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활활 타오르던 때라 부모님한테는 제주에 집을 구하기 전까지 비밀유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제주에 내려와서 이미 벌어진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마침 인기 드라마인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이 안변책을 통과시키려고 이성계의 인장을 몰래 찍은 것과 비슷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내 전략이었다. 이것만 봐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덤비는 행동파 성격이 강한 것 같다. 그 이전부터도 내 성격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제주이민을 마음먹고 '결행'하기까지 망설임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서 못 가게 될까 봐 걱정했다. 이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다.
갈까 말까 고민될 때는 가고,
살까 말까 고민될 때는 사지 마라.
이렇게 멋진 말은 누가 처음 했을까? 만약 내가 이 말을 몰랐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제주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 문장이 나를 제주도로 이끌었다. 어차피 선택은 내 몫이지만, 나 역시 평범하고 가진 것 없는, 작고 나약한 사람일 뿐이어서 '내 선택에 대한 불안'을 '희망과 확신'으로 바꾸어 줄 연료가 필요했다. 그게 단 한 줄의 문장이었고, 나는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오롯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