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말고 괸당

by 자유지은


들어는 봤나? 여당, 야당보다 강력하고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한다는 괸당!

우리나라는 각 지역마다 큰 지지를 받는 정당이 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어느 지역은 '야당의 텃밭이다' '여당의 정치 기반이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지역의 정치색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는 여야 중 어느 쪽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주도는 그런 거 없어요. 지금 원희룡이 도지사인데, 여당이라서 뽑힌 게 아니라 괸당이 많아서 당선된 거예요. 제주도는 괸당 사회라서 무소속인 사람이 출마해도 괸당만 많으면 당선되요." (실제로 도지사 당선자도 무소속이 더 많다)


아니, 대체, 괸당이 뭐길래?



괸당 :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 권당(眷黨)에서 비롯된 말이다.
넓은 의미로 이웃도 포함된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집성촌과 씨족사회 문화가 발달되었고, 괸당끼리는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는 문화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화가 단지 친인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친한 이웃이나 지인까지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느 누가, "이제 우리 괸당이 됐으니까..."라고 말하면, 진짜 나를 친인척과 동급의 친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된다. 꼭 정치적으로 보이는 여당 야당 같은 편 가르기가 아니라, '내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의 괸당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의 또 다른 괸당과도 금세 친해질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도 생기면 그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당원을 총동원하여 도와줄 것이다.


그런데 제주 이주민에게 처음부터 괸당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제주 이주민의 경우에는 정착 과정에서부터 '이주민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도 이주민끼리 괸당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같은 공감대를 가진 이주민끼리 소통하며 지내는 것은 제주 이주민으로서 정착생활 초기에 겪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겨낼 힘과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주민 그룹에 속해 본 적도 없고, 페이스북 등 어떤 이주민 모임에도 가입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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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처음부터 '일부러' 이주민 모임과는 거리를 두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주민끼리만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이 부분에서 약간 부정적인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주민 모임에 나간다고 이주민끼리만 어울려 산다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내가 제주도에서 알게 된 사람이 10명이라고 했을 때, 그중에 9명 정도가 이주민이라면 어떨까? 물론 공감대도 많고 통하는 면이 많아서 좋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끌리기 때문에 주로 이주민들과 어울리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제주도에서 나의 정체성이 이주민으로 굳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외국에 유학 나가서, 한국인하고 어울리지 말라고들 한다. 외국 나갔으니까 현지인과 사귀라고. 왜일까?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해할 것이다. 나는 제주이민 생활도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꿈꾸던 제주이민은 진짜 제주도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고, 제주어를 배우고, 제주도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주도민화'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같은 이유로 지금도 제주도에서 인맥이 넓지는 않다. 그 대신 내가 제주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제주 토박이다. 제주도에서 괸당의 힘은 선거의 판도를 뒤집을 만큼 엄청나다. 내가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이사 올 때는 신구간도 아닌 6월이었다. 그런데도 깔끔한 남향집을 구하는데 1주일밖에 안 걸렸다. 그 괸당들이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제주대 게시판, 제주맘 카페, 오일장신문 등 각종 사이트를 뒤지고, 지인들에게 수소문 해준 노력 덕분이다. 어떤 괸당에 소속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 경험이었고, 감탄했으며, 또 한번 감사했다. 이렇게 나를 괸당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주생활의 큰 자산이고 버팀목이 된다. 요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내 고향이 서울이라고 하면 "이주민이었어요?"라고 묻는다. 원래 제주도 사람인 줄 알았다는 거다.


나는 '서울 가면 서울사람, 제주 오면 제주사람으로 보이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꼭 나처럼 이주민 모임을 멀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착 초기에는 분명 어떤 일이든지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이주민 네트워크는 생각 이상으로 광범위하고 놀라운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 유별나게 각진 사람만 아니라면 누구나 소외감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이주민하고만 어울리는 것은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균형 잡힌 식사를 권하는 것처럼 두루두루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제주사회에 뿌리내리는 게 진정한 의미의 '제주 정착 성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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