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주민의 휴일 사용법

by 자유지은


내가 제주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석 달에 한 번 정도 올라가니까, 친한 친구라고 해도 기껏해야 1년에 4번 정도 만나는 게 전부다. 서울에 살았다면 시도 때도 없이 만나서 함께 치맥도 하고, 맛집도 가고, 요즘 뜬다는 00동에 가기도 하고, 영화든 뮤지컬이든 친구와 함께 보러 가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20대에는 친구들로 인해서 내 삶에 큰 에너지를 얻곤 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친구는 항상 애인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존재였다. 이렇게 소중한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없게 된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젊음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불금'과 '불토'는 이제 나와 상관없는 단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주 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는 휴일이 주는 달콤한 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행의 맛'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노는 게 스트레스 해소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제주에 살면서 휴일마다 제주 여행을 다니는 것은 내 영혼에 평화와 행복감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저 이곳 '제주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제주의 자연은 포근하고, 광활하며, 풍요롭고, 촉촉하고, 아름답다.





나는 낯선 곳을 좋아한다


제주생활에는 익숙해졌지만, 제주여행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미 여러 번 갔던 곳도 그날의 계절과 날씨에 따라 확연히 다른 풍경이 된다. 특히 바다는 그날의 햇살과 구름, 바람과 파도에 따라서 시시각각 그 옷을 갈아입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지루할 틈도, 질려버릴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누군가 나를 바다 예찬론자라고 말한대도 반박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떤 변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맞는 말이니까.


이주민이 되기 전, 나는 제주여행을 올 때마다 이런 제주 바다를 두고 돌아가야 한다는 게 싫어서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제주바다에 미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용감무쌍하게 제주이민을 결행했고, 휴일마다 제주를 여행한다. 이런 내가 제주 이주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는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의 섬이다. 나는 이렇게 낯선 것을 좋아한다. 낯설어서 어색한 가운데 앙꼬처럼 숨어있는 설렘이 좋다.





때로는 여행자들에 섞여서 올레길을 걸어도 좋고, 그냥 혼자서 가까운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는 것도 좋다. 또 어떤 날에는 행선지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나갔다가 일주 버스를 타고 김녕 성세기 해변까지 가서 멍하니 바다만 보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또 하루는 점심 무렵에 우도로 출발해서 자전거를 타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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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민을 온 뒤에 제주를 여행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비 오고 흐린 날에는 그냥 편하게 집에 있어도 된다는 '여유로움'이 생긴 것이다. 여행자로 왔을 때는 아무래도 하루하루의 시간과 여행 일정이 너무 짧게 느껴지기 때문에 '숙소에서 푹 쉬지 뭐~' 하는 여유를 부린다는 건 사치와 마찬가지였다. 꼭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꼭 오늘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더 좋은 날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생겼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여유라는 것이다.



나는 제주에 온 뒤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이 블로그의 타이틀은 <일상 곱빼기 여행>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일상에서 동떨어진 '다른 세상을 만나는 시간'인 동시에 일상에서 보지 못한 '삶의 단면을 관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꼭 외국이 아니어도 되고, 꼭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일상이라는 시간 위에 올려진 '덤'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꼭 휴일이 아니어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여행이 된다.



퇴근 후에 보러 간 차귀도와 낙조


잘 알다시피 제주도는 섬이다. 동서남북이 전부 바다라서 시내권에 살아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매일 바다를 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탑동 해안가에서 매일 조깅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데다 아침잠이 많아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해변가의 조깅'은 한 번도 해보지 못 했지만, 가끔 평일 저녁에 일몰을 보러 가기는 한다. 이 또한 서울에 살았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겠지만, 집에서 차로 10분만 가면 바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 나온다. (용두암은 걸어서도 갈 수 있다.)



바다를 제일 좋아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바다 대신 숲을 찾는다. 오름도 좋고 곶자왈도 좋다. 제주의 숲은 어디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나무 향기에 취할 수 있는 힐링 구역이 되어준다. 특히 곶자왈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신비스러운 숲'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을 파헤쳐서 개발을 한다니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그린벨트의 상당 부분이 개발규제가 풀어진 지 오래고,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제주 건축경기는 몇 년째 호황이다. 그래서인지 산림이 점점 파괴되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곶자왈 '환상숲'



요즘엔 벚꽃축제 시즌이라 벚꽃축제로 유명한 지역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마침 내가 사는 곳은 올해 벚꽃축제가 열리는 '전농로'에 인접해 있는데, 이미 일주일 전부터 벚꽃이 눈에 띄게 피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에 축제 조명이 설치되었다. 축제 기간에는 시끄럽겠지만 이 동네에 살다 보니 오며 가며 벚꽃이 하나 둘 피어나는 것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출퇴근할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사진을 찍곤 한다. 어디에 따로 벚꽃 구경을 갈 필요도 없이, 매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휴일에 벚꽃구경 대신 다른 곳에 놀러 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 하나를 더 벌어놓은 샘이다.



4월 1일부터 벚꽃축제가 열리는 제주시 전농로






어쩌면 자기만족에 그칠만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정도만으로도 불금을 비롯한 서울생활의 장점을 충분히 상쇄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제주에 살면서 제주를 여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일상에 덤' 아닐까?


우리는 인간이기에, 100% 만족하는 삶이나 완벽한 행복은 없을 것 같다는 전재 하에, 이렇게 제주생활에 만족할 수 있는 것 또한 개인의 취향이고, 성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오늘의 자랑 아닌 자랑 같은 제주 이주민의 휴일 사용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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