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감나무집에서 산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휴일 아침이었다. 새소리에 눈을 떴는데 집안은 고요하다 못해 정막으로 가득했고, 천장부터 이어진 사방의 하얀 벽은 창문 너머의 밝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눈부시고 조용한 아침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눈만 깜빡깜빡 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또 새소리가 들렸다.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이 명상하라며 틀어주던 CD에서 흘러나오던 것과 똑같은 소리였다.
'우리나라엔 살지 않는 새인 줄 알았는데...'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소리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 새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포근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이불 대신 옷걸이에 걸려있던 카디건을 대충 걸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지붕을 쳐다보다가 새소리를 따라 걸음을 멈춘 곳이 바로 감나무 아래였다. 생소한 모습의 새 두 마리가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있는 감을 쪼아 먹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식사를 지켜보는데도 새들은 인간인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심한 태도로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앉아가며 때때로 노래를 부르고 한참 동안 감을 먹더니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한번 새가 눈에 들어오자, 다음날, 또 그 다음날에도 새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 새들은 매일 아침마다 계속 와서 노래했다. 나무 있는 집에 처음 살아본 나는 그 새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다시 돌아온 어느 휴일 아침부터는 더 이상 그 새들을 만날 수 없었다. 나는 마당에 나가 감나무 아래에 수북한 낙엽 사이로 떨어진 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방에 들어와 앉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봄이 코앞인데 어쩐지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아, 이런 게 외로운 건가' 싶었다. 서울에 살면서는 항상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외로움을 느낄 틈조차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나 혼자 '외딴섬'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 나게 와 닿았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계속해서 아쉬운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날씨 좋은 휴일인데... 이제 나한테 홍대 브런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구나.'
한껏 홀쭉해진 마음에 친한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때아닌 심경고백을 했다. 그랬더니 언니가 하는 말,
"얘가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그 시간에 홍대까지 나가서 브런치 먹으려면 씻고 뭐하고 귀찮아서 나갈까 말까 한데... 서울 살 때 브런치 몇 번이나 먹었다고 그래? 오히려 거기서는 마음만 먹으면 바다 보면서 브런치 먹겠구만."
역시 언니는 나의 멘토 답게 막힘 한 번 없이 시원하게 말을 뽑아냈다. 사실 여부를 논하거나 일일이 반박할 수도 없을 만큼 구구절절 옳은 소리 같았다. 그녀는 나의 제주행을 누구보다도 지지하고 응원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언니가, 이런 말을 해주는 언니가 한없이 고마웠다. 그 덕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따위 브런치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지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유난을 떨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휴일 아침에는 피곤에 쩔어서 밀린 잠을 자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나? 나는 확실히 서울에서보다 덜 피곤한 삶을 살고 있었고, 휴일 아침에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놀라운 변화를 맞은 것이었다. 그만큼 '내 시간'이 늘어났고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몰라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나는 언니와 전화를 끊고 잠시 동안 진짜 명상을 했다.
그리고는 내가 제주에 온 후로 달라진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의외로 소소하고 다양한 면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주민등록 소재지가 제주특별자치도로 변경되었다.
-관광지에서 제주도민 할인을 받게 되었다.
-영화 보는 횟수가 줄었다.
-휴일 아침에도 잘 일어난다.
-가방 안 들고 다니는 날이 많아졌다.
-그동안 옷을 한 벌도 사지 않았다.
-민낯으로 외출해도 부끄럽지 않다.
-재래시장에서 장을 본다.
-바람 때문에 추위를 많이 느낀다.
-암호 같았던 버스시간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음식을 일체 먹지 않았다.
-딱새우 쉽게 먹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택배 주문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걸어 다니는 시간, 산책시간이 늘어났다.
-옆집에 사는 할머니, 검은 개를 산책시키는 동네 할머니와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제주에서의 내 일상과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서 내가 '제주도민화'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서울여자'나 '서울깍쟁이'처럼 나를 대변하는 듯했던 '도시적인' 것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제주의 삶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불안은 다시 확신으로 바뀌었고, 내 마음은 또 다른 행복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서나, 어디까지나-
역시, 마음먹기 나름이다.
갑자기 나의 제주 생활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휴일 하루도 더 행복하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나는 이때부터 '나를 위한 소풍'을 다니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소풍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가서 한참 돌아다니다가 예쁜 바다가 보이면 그 앞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곤 했다. 문득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휴일의 홍대 브런치'보다 '음식의 멋'은 없을지라도 내 앞에 놓인 '바다 풍경'은 내가 만든 '정체불명 도시락'조차도 맛있고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었다. 얼마나 어렵게 내려온 제주인데... 내가 서울을 등지고 대신 얻은 것들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했을까? 일상의 모든 것들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우리 주변에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행복해할만한 것들이 많다. 돌아보고 또 살펴보며, 그렇게 '지금' 행복하자고, 한 번 더 되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