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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솔윤베씨 Apr 14. 2024

걱정 없는 스타일

over the line



어른들은 아이들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책 _ 작별인사 (김영하) 글 중에서







솔이에게 휴대폰을 사주고 

자주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구나' 



나는 솔이가 유튜브에 빠져 살거나 

게임에 중독되거나

친구들과의 카톡에서 방황할까 봐 

할 수 있는 걱정이라는 걱정은 

죄다 모아놓고 눈썹을 찌푸리곤 했었다. 



하지만 정작 휴대폰을 사줬을 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솔이에게 휴대폰은 

휴대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학교 마치면 학원 간다고 전화하고 

학원 마치면 집에 간다고 전화하고 

오다가 들풀이나 동네 고양이 사진을 찍거나

명절에 만난 사촌에 팔촌과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온전히 전화기와 카메라의 역할에 충실했다. 



사실 그 충실함도 얼마 가지 않았다. 

아침에 옷 고르기 전 날씨를 본다거나 

아침밥 먹고 수다 떨다가 

지각하면 어쩌나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로 

그 쓰임이 변하더니 

요즘은 아예 진동을 해 놓고 

아침에 챙기는 물통처럼 들고 다니기만 한다. 








그 모습이 내심 반가운 건지 빈말인 건지

오늘 아침엔 

 일찍 일어난 솔이를 끌어안고 

뒹굴뒹굴하며 말했다. 

주말이나 학원 마치고 

가끔 민지한테 연락해서 놀고 그래 

민지 귀엽잖아 ~ 



민지는 엄마인 내가 좋아하는 솔이 친구다. 

작년 2학기 때 솔이가 처음 부산으로 전학 온 날

복도에서 열린 문틈 사이로 

안쓰러운 마음에 윤솔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귀여운 꼬마 친구가 윤솔이 어깨를 톡톡 치며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뒤통수만 보였는데도 그 얼굴이 어찌나 귀엽고 고맙던지 

그 덕분에 한결 긴장이 풀린 솔이 얼굴을 바라보며 

학교를 나왔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는 처음 보는 솔이 친구들이

나를 '솔이 엄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민지는 나를 보자마자 이모라고 부르며

어찌나 싹싹하고 애교 있게 대하던지 

나마저 민지에게 푹 빠져버려

솔이가 민지랑 논다고 하면 

거두절미 오케이 

재미나게 놀다가 오라고 하곤 했다. 



종종 우리 집에 들러 저녁밥을 챙겨주면

어찌나 밥도 잘 먹는지 

어찌나 윤솔이 윤성이랑도 잘 노는지 

또 예의는 얼마나 바른지 

그 와중에 순수하고 착하기까지 

내 마음에 쏘옥 들었던 솔이 친구



그런데 언제인가 솔이랑 민지랑 같이 놀던 

또 다른 친구랑 싸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들끼리 민지랑 놀지 마라, 

또 누구랑 놀지 마라 이렇게

감정다툼하는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그리곤 놀이터에서 전처럼 노는 모습을 못 봤는데 

이번에 2학년 되면서 반도 달라지고 

민지 얼굴 볼 일이 없어졌다. 

가끔 등하굣길에 민지를 만나면 

나에게 안 길듯이 뛰어와 

반가워 웃어대는 민지를 보면서 








윤솔이에게 말했다. 

민지 착하고 귀엽잖아.

엄마는 민지 좋던데 

가끔 연락해서 놀고 그래. 

솔이도 맞다고 민지는 착하고 순수한 친구라고 말했다. 

근데 내가 너무 과했나.

다 이유가 있을 텐데 

귀는 막고 입만 열었나. 

알겠다는 솔이 말에 또 한 번 

민지랑 연락하고 놀라고 하니




솔이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 엄마, 나는 그런 걱정 없는 스타일 아니거든?'








나도 무슨 이런 일까지 다 참견이었지

아차, 하는 마음이 든다. 

놀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좀 어울리라는 것도 

별스런 참견이란 생각이 들면서 

아차차 또 딸에게 선을 넘었구나 

반성한다. 



다 이유가 있겠지, 

MBTI도 안 맞을 수 있고 

혈액형도 안 물어봤네

뭐 같이 다니는 학원도 없고

반도 다르고 

걱정도 스타일이 다르니 

뭐 다 이유가 있겠지. 



무안함이 아침을 깨운다. 

서둘러 소프트 마사지를 끝내고 : ) 

아침 먹게 옷 입고 나와라고 말하며 

머쓱하게 주방으로 향하는데 



어쩌면 항상 과한 엄마의 스타일

걱정마저 과한 나의 스타일이

정반대의 민지에게 팬심으로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부럽다. 걱정 없는 스타일. 



그렇지만 내 딸은 내가 아닌걸?

내 딸은 그런 스타일이 아닌걸?




오늘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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