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아이와 말 없는 엄마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솔이는 말이 많다. 정말 많다. 수다쟁이다. 평소에도 말이 많고 잘하지만 피곤하거나 졸리면 더 말이 많아지고 더 수다쟁이가 된다. 이건 다 남편을 닮았다. 남편은 따라올 자 없는 수다쟁이다. 외동아들이라 말벗이 없어서 그랬는지 어릴 때 그렇게 혼자서 많이 떠들어 댔다고 한다. 시부모님들이 너무 말이 많아 아예 대답을 안 하면 대답마저 스스로 하면서까지 수다를 떨며 만랩을 찍었다고 하니, 그 아버지의 그 딸이다.



솔이가 본격적으로 말을 한 건 두 돌쯤, 솔이를 가졌을 때 태교는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태어나고 나서는 말도 많이 걸어줬고 책도 많이 읽어줬다. 무엇보다 집에 텔레비전을 없애서 솔이가 가장 많이 접한 게 책이고 그게 놀이가 돼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말문이 트이고 나서 어휘력과 문장 구사력이 눈에 띄게 빠르게 성장했다. 부사, 조사, 수식어 뭐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런 말들을 하면서 찰떡같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좀 과장해 일곱 살 정도의 어휘 수준이라며 혀를 내두르는데 그게 백 프로 칭찬 같지는 않았다. 말을 잘하면서 말이 많으니 선생님들은 솔이를 척척 박사라 부르기도 하신다.




캡처.PNG




남편과 솔이는 정말 잘 통한다. 둘이 말이 많은 게 가장 큰 이유고, 그다음은 남편의 능력이다. 말이 많아서 인지(?) 타고나길 다정한 사람이라 딸과 노는 시간이 어느 한 군데 불편한데 없이 물 흐르듯 잘 논다. 그래서 그런지 둘이 만나서 시너지가 생겨서 말잔치가 벌어진다. 그래서 나는 주말 나들이를 갈 때면 무조건 운전대를 잡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간다. 차라리 듣자. 말발도 밀리고 어눌한 내가 그들 사이에 끼면 사달이 난다는 직감으로 나는 항상 솔이와 남편과 거리를 둔다.



둘이 만나서 정말 쉬지도 않고 말을 하는데, 사실 그게 내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지만 가끔 신경질이 난다. 짜증이 난다. 내 기분이 안 좋거나 나도 피곤한데 귀까지 피곤하게 만들 때면 '제발 좀 조용히 해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시비를 걸리도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제발 둘이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 하라고 했다가 남편이 정색하기도 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쓸데없다고?' 이러면서 말이다.




[[[.PNG



근데 내가 듣기에는 별 쓰잘 떼기 없는 말만 늘어놓는 경우도 많은데 두 사람은 뭐가 그렇게 진지하고 세상 재미있은 지 나는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말이다. 솔이 방학을 시작으로 나는 한층 업그레이든 된 솔이의 어휘력과 문장 구사력 위에서 춤을 출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도 정말 최선을 다해 대화하고 대답하고 농담도 하고 놀이도 하는데 그게 전부 다 말이니 나는 신생아 때 수면부족으로 헤롱 거리던 그때가 다시 데자뷔 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오늘은 낮잠을 자고 오랜만에 키즈카페에 다녀왔다. 좀 컸다고, 들어가자마자 어디로 사라져서는 혼자 봉봉도 뛰고, 공주 옷도 갈아입고, 청소기도 밀고 그런다. 그렇게 꼬박 두 시간을 무슨 사우나에 온 것처럼 땀을 흘리고 놀더니, 밖에 나와선 또 달리기 경주를 혼자 한다. 얼마나 심장이 빨리 뛰면,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면 저럴까 싶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분명 집에 가는 길엔 녹초가 될 텐데... 그건 무얼 의미하는가?

내 귀도 같이 녹초가 됨을 의미한다.





[[[[.PNG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아니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차에 타기 전부터 이 차는 우리 차가 절대 아니다부터 시작해 세상에 있는 오만 말들을, 그리고 본인이 아는 모든 말들을 다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것도 평서문이 아니라 의문문으로 끝나는 말들. 고로 나는 귀도 입도 녹초가 된다. 대답을 허투루 했다가는 또 한소리 들을 테니 정신 차리고 말해야 하는데 운전하랴 대답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집으로 오는 길 30분도 채 안 걸리는데 무슨 귀성길 차 안처럼 또 아득해진다.


그래서 남편이 귀가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려는 남편이 제일 밉다. 남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설거지를 하는 동안 솔이와의 수다시간이 더 연장되는 것이니, 나는 남편이 그냥 솔이랑 수다 수다나 했으면 좋겠는데 무슨 좋은 아빠에, 좋은 남편까지 되어보겠다고 설거지 구애를 하는 건지 속이 터진다.




[[[[[.PNG




지난번엔 놀이터에서 땀을 빼고 돌아와 정신없이 에어컨을 켜는데 뒤에서 또 쫑알쫑알.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리고 에어컨 앞에 서서 급하게 버튼을 눌러대는데 솔이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자기 말에 제대로 대답을 안 하니

' 엄마? 지금 혼잣말하는 거 같아, 에어컨이랑!!! '



솔이는 가끔 나를 너무 얼어붙게 만든다. 마음도, 귀도, 입도. 지금도 솔이의 수다를 잠시 피해 컴퓨터 방에 와 글을 쓴다. 남편에게 솔이를 부탁하고. 그 와중에도 솔이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충실히 보고 겸 스몰 톡을 하고 나가는데, 사실 이 모든 것이 귀엽다. 이제 와서 무슨 훈훈한 마무리냐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솔이의 수다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가끔 어떻게 저 작은 입에서 저렇게 향기로운 말들이 나올까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기도 한다. 솔이가 수다스러운 게 더없이 고맙고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게 진짜 내 마음이다. 다만 듣기만 하면 더더더 없이 좋을 텐데.



정말 좋을 텐데......






keyword
이전 10화텔레비전 없이 아이 키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