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솔이가 곧 36개월, 3돌이니 우리 집에서 텔레비전을 못 본 지도 딱 3년째다. 솔이 태어나면서부터 텔레비전 코드를 확 뽑아 책장 위에 올려버렸다. 언제 다시 꺼낼지 모르니 먼지 덮개로 야무지게 싸서 없애버린지 딱 3년째다.
텔레비전 없이 살면 어떠냐고? 물론 재미가 없다. 최신 예능도 안 보고, 뉴스도 안 보고, 드라마도 안 보고, 다큐도, 축구도 다 안 본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 때가 정말 많다. 아직도 고리짝 농담을 하거나 신조어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한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랑 인터넷이랑 구분할 것 없으니 인터넷을 하면서도, 또는 sns를 하면서도 남들 다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따로 검색해서 찾아볼 때도 많다.
나는 원래도 옛날 사람인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안 듣고 사니, 정말 오래오래 오래된 사람이 된 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텔레비전의 부재가 먼지 한 톨도 안될 정도의 무게였다니, 놀랄 때도 있다. 그만큼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에서 텔레비전은 의미가 없는 가전제품이다.
신혼 때는 남편과 종종 드라마도 챙겨보고, 무한도전도 즐겨봤다. 아이유와 김수현, 공효진, 차태현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야식을 먹을 때도 많았다. 그때는 거실도 좁았는데, 거실에 텔레비전 그 앞에 식탁이니 밥 먹을 때나 이야기할 때 무조건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태교는 딱히 안 했지만 육아가 도대체 뭔가 싶어 관련 서적은 많이 찾아봤다. 책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안에 정해진 룰이, 텔레비전 없이 아이 키우기였다. 아마 텔레비전을 비롯해 미디어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자 했는 듯하다. ( 텔레비전은 승리했지만 아이패드는 패했다.ㅋㅋ)
처음 6개월 정도는 남편이 굉장히 괴로워했다. 장모님도 와계셔서 딱히 할 일이 없는데, 티브이까지 없으니 오갈 데 없고 할 일 없고 자기 포지션을 못 찾아 방황했던 것 같다. 그때 남편이 텔레비전을 좀 아쉬워했었다. 그렇지만 남편도 곧 적응하리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육아에 있어서 텔레비전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이해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그냥 코드를 뽑아버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 년이 지나갔고, 이년이 지나갔고, 이제 곧 삼 년째다. 솔이는 태어날 때부터 텔레비전이 없었으니 부재 자체를 못 느끼고, 우리 부부도 이제는 텔레비전 있는 것에 더 어색함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번 솔이 방학 때 친정, 시댁을 오가며 텔레비전 앞에서 넋을 빼고 앉아있는 솔이, 나, 남편을 마주한 적이 많다. 세상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고 즐거운지 넋을 놓고 봐도 봐도 너무 재미있어서 이 재미없이 어떻게 여생을 보내나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돌아서면 끝이다. 그냥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나온 거처럼 그렇게 시댁에서, 친정에서 리모컨 돌려가며 텔레비전을 보고 왔다. 참, 홈쇼핑은 정말이지 어메이징, 퐌타스틱이다. 텔레비전 보다가 휴대폰 들여다보니 화면은 왜 이리 작은지 ㅋㅋㅋㅋ
근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텔레비전 없이 아이 키우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이다. 육아서적에서 보면 태어난 지 1년 안에는 되도록 미디어 노출을 하지 않는 게 좋고 그 후로도 최소한으로 노출하되, 부모와 함께 하는 게 좋다는 말이 많다. 그 이유는 지금은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내 생각으로는 미디어의 '일방적인 전달방법, 자극적인 정보'에 빨리 익숙해진 경우에, 시간을 들이고 생각하고 소통하는 일을 익히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더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영유아기 때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성장하는데 그럴 기회를 많이 놓치기 때문에, 미디어 노출이 영유아기에는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그런 마인드로 텔레비전 없이 3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 월드컵 때는 크로아티아 응원한다고 혼자 방바닥에 텔레비전 설치하고 이어폰 끼고 밤새 보기도 했다) 사실, 지금 4살인 솔이에게 정말 유익하고 효과적인 일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 중에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이렇다, 이렇게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텔레비전 또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작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그 시간을 무조건 다른 놀이로 채우게 된다. 우리 부부의 경우, 그 시간을 대부분 책을 읽어줬고 밖에 나가서 그냥 뛰놀게 했다. 솔이가 아직까지는 책을 많이 좋아하고, 그 덕분인지 어휘력도 문장 구사력도, 인지능력도 또래에 비해선 높은 편이다.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솔이는 상호작용을 좋아하고 이해력이 높아서 뭐든 빨리 배우는 편이다.
사회성 제로, 사교력 제로, 앗싸 인 엄마한테서도 저렇게 생기발랄하고 야무진 아이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한 번씩 벅차기도 하다. ㅋㅋㅋ 아직 끝이 아니니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래도 솔이의 그런 긍정적인 면을 볼 때마다 '아, 텔레비전 없이 살기를 참 잘했구나' 이런 생각도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텔레비전은 완승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ㅋㅋㅋ 아이패드에서는 완패했다. 솔이도, 마샤도 보고, 폴리도 보고, 옥토넛도 보고, 뽀로로 환장하고, 요즘은 겨울왕국에 빠져 산다. 밥 먹을 때 제일 많이 보고, 차에서 혼자 갈 때, 너무 졸릴 때 그럴 때 넷플렉스를 많이 본다. 다, 영어로 : )
뭐, 어떻게 연기를 잘해서 엄마, 아빠 휴대폰에는 한국어가 안 나온다고 몇 번 말한 뒤로는 다행히 영어를 언어로 받아들였다기보다는 그냥 배경음악쯤으로 이해하고 영어로 된 영상도 잘 본다. 그래서 솔이가 영어까지 잘한다! 이건 절대 절대 아니지만 그냥 엄마 아빠의 작은 위로 정도는 된다. 그래도 우리 부부의 작은 룰이 있다면, 외식을 할 때 절대 영상을 틀어주고 밥을 먹이지 않는다는 것. 어른들 밥 먹기 위해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준 적은 없다.
돌쯤 회전 초밥집 가서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한 번 보여줬다가, 남편이 정말 어두운 얼굴로 '우리 이러진 말자' 말한 뒤로, 단 한 번도 식당에서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처음엔 영상을 보여주는 다른 부모들을 보며 우쭐댄 적도 있었지만, 각 가정마다 룰이 있는 것이고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일이 아님을 아이를 키워가며 몸소 느낀다. 그러니, 이게 자랑까지는 아니지만 그저 우리 부부가, 그리고 솔이가 가지고 있는 미디어에 대한 소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지금 우리의 삶에 그리고 우리의 규칙, 그리고 소신에 만족한다는 것. 하지만, 쇼미 더 머니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거듭 생각해도 비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