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지난주 금요일은 나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솔이는 모래놀이 상자에 리본을 묶어 생일선물이라며 내게 주었다.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무언가를 아 맞다, 뚜뚜 고구마 이유식을 만들다가 깜짝 놀란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모래놀이 상자를 받았다. 그 상자는 다시금 솔이 장난감 통에 들어가 있지만 솔이는 일주일 내내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애를 썼다. 뭐를 사주겠다고 호언장담도 했다가 엄마한테 쓰는 편지라며 내 이름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기도 했다. 막상 내 생일날에는 유치원에서 하얗게 불태웠는지 내내 투정만 부리긴 했지만 솔이는 솔이의 역할을 다했다. 정말 행복한 생일을 보냈다.




생일 전 날 밤 11시 몇 분쯤, 남편과 나란히 앉아 컴퓨터를 하며 물었다. 허니 왜 이번에는 선물 못 줘서 안달 안 해? 남편은 단순하진 않은데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사람이다. 나에게만 그럴 수도 있다. 무튼 남편은 매번 생일날 나보다 자기가 더 들뜬다. 선물을 준비해놓고 얼른 주고 싶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고맙다고 잘했다고 센스 있다고 칭찬받고 싶어 그 전 날부터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에는 생일도 되기 전에 선물을 풀어보게 만드는 남자다.


서울로 이사 온 이후 매 해 생일에 목걸이를 선물한다. 남편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환승하는 정류장 근처에 미니골드가 있다. 매 해 거기서 조금 더 비싼 목걸이를 선물한다. 뭐 싫지는 않지만 3년쯤 반복되다 보니 뭐랄까? 고민을 좀 하게 만들고 싶달까?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 목걸이 선물만은 안된다고 못 박았다. 작년에 받은 목걸이를 얼마 전 뚜뚜가 잡아 뜯어 목이 허전하긴 하지만 올 해는 no more 목걸이다.



그런 사람이 올 해는 조용하다. 이제 곧 12시 땡, 내 생일인데도 생일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선물 주고 싶어 발을 굴리지도 않는다. 뭐지? 뭐 또 요가 지도자 준비하고 있으니 요가복을 샀겠지, 요가매트가 낡았으니 요가매트를 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 내 입에서 먼저 말이 나왔다. 허니 왜 이번에는 선물 못 줘서 안달 안 해? 뭔가 진 느낌이다.







승자의 얼굴을 한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일 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목걸이라고, 옆에 숨겨놨다고 여유 있게 농담도 던졌다. 아쉬울게 뭐 있나 싶어 알았다고 말하고 나란히 앉아 각자 컴퓨터를 했다. 먼저 컴퓨터를 끄고 소파에 누워 남편에게 말했다. 허니는 어떻게 사람들이랑 친해져? 요가 지도자 과정을 준비하며 동기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그게 너무 어렵게 느껴져 남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보통 남편이 내 고민의 해답을 주진 않지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에 나는 혼자 떠들다가 아하,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아, 너무 좋은 사람인척 하지 말아야지 라는 결론을 내리며 남편과 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 그렇다. 12시를 넘겼으니 내 생일이다. 남편의 다시금 예전의 남편으로 돌아와 생일 선물을 꺼냈다. 생일 축하 노래도 없이, 케이크도 없이, 미역국도 없이 사진도 한 장 못 담을 만큼 프리 한 상태에서 기습선물을 건넸다. 에어 팟 프로. 세상에나 마상에나. 정말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나조차도 이런 걸 갖고 싶어 한 적이 있었던가 싶은 선물이다. 너무 좋다.



이걸 귀에 꽂으니 왜 에이팟 광고에서 그 여자가 그렇게 혼자 신나서 춤을 추며 길거리를 쏘다녔는지 알 수 있다. 노이즈 캔슬링에 한 순간 매료된다. 귀에 꽂고 처음 들은 노래도 아델의 when we were young이다. 완벽하다. 귀걸이의 뫼비우스 띠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남편에게 연신 잘했다고 너무 좋다고 너무 고맙다고 센스 터진다고 듣거나 말거나 혼자서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남편은 내가 예상한 대로 승자의 얼굴로 나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내 거라고 자기는 껴보지도 않는다. 그렇게 새 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말이다.






하 _ 너무 좋다. 이걸 꼽고 무아지경으로 요가할 생각을 하니 설레어 잠을 잘 수가 없다. 에어 팟 넣는 통은 어쩜 이리 작고 귀엽고 부드러운지 뚜껑 열리고 닫히는 것도 보통이 아니다. 왜 사람들이 쓸개 빠진 것처럼 그 큰돈을 주고 애플을 사재 끼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빠져들고 있다.




서른다섯의 생일은 정말 완벽하다. 해가 갈수록 친구는 줄고, 축하 인사도 드물어지지만 가족이 있다는 것에 큰 힘과 위로를 받는다. 더군다나 그 가족이 에어 팟 프로를 선물하는 센스만점 남편이라니 나는 이제 배부른 소리도 못하겠다. 너무 좋아서 : )





허니 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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