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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Nov 03. 2016

가르강튀아 이야기, 마시자! 즐겁게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풍자소설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은 두 거인 왕의 일대기를 그린 가짜 전기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흥겨운 에너지와 당대에도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내용이 가득하다. 화려하게 피어난 문화운동 르네상스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재해석, 재생산을 추구했다. 이런 사상에 감화받은 라블레는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근대적 인간상과 자연에 대한 판타지를 기법상으로는 역으로 리얼리즘을 통해 묘사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언제나 ‘목마른’ 인물들이다.

부모의 과음으로 정상적인 출산이 불가능해진 가르강튀아는 탯줄을 거슬러 올라 어머니의 귀를 통해 태어난다. 이 비범한 아기가 한 첫 번째 말은 ‘응애’가 아닌 ‘마실 것! 마실 것! 마실 것!’이었다. (P.47)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 역시 ‘엄청난 가뭄 속 바닷물보다 더 짠 땀이 솟아나던 날’ (P.284-285) 술 땡기는 자극적인 음식과 향신료 가운데 탄생한다.

이런 탄생은 주인공을 그리스 신화 속 신들과 동일시해 고전을 차용하거나 재해석하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특징을 드러낸다.

수많은 날들을 같이 할 애마 타르몽디를 타고 파리로 수학하러 간다.
의도치 않게 각종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학문에 관심을 두며 술도 좀 줄이고 진지하게 삶을 모색한다.
관우에겐 적토마가, 가르강튀아에겐 타르몽디가.


엄청난 술꾼인 이들은 당연스레 갖가지 사고와 기행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사고와 기행은 악의적 즐거움이 아닌 오히려 무해한 의도의 탐구심으로 묘사된다.

물리적 갈증은 정서에 반비례해서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가르강튀아는 술을 줄인다. 가르강튀아 덕에 고급 와인을 즐길 수 있던 스승이 아쉬워할 정도로 그는 의젓해진다. 명마 타르몽디와 함께 무수한 모험과 전장을 누비며 가르강튀아가 이룬 유토피아는 팡타그뤼엘이 더욱 공고히 한다.

진리에 대한 주인공들의 갈증에는 권위적인 종교에 역행한 르네상스식 인본주의가 입혀져 있다. 라블레는 탐구와 지식, 이성의 힘만으로도 인간은 진보하고 절대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차용된 네이밍은 와인이든 지식이든 끊임없이 마셔대면서도 갈증을 느끼는 초거인의 모습에 블랙홀의 특징을 중첩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원래 작자미상의 조악한 대중소설이던 <가르강튀아>는 식탐 많고 지저분한 거인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 캐릭터에서 영감 받은 라블레는 아들 팡타그뤼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작을 발표했다.

금성 전집에는 가르강튀아 연대기에 해당되는 부분이 원전의 부제를 따라 서술된다. 아동 대상 축약분인 만큼 얼핏 읽어보면 신비로운 거인 왕에 관한 동화처럼 쓰여 있다. 때문에 라블레 특유의 흥겹지만 현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서사를 엉뚱하고 웃긴 에피소드로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금성 전집 번역이 너무 따분하다.

금성 전집의 <가르강튀아 이야기>는 동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원전을 동화의 분위기로 북돋우고 있다. 아무래도 무라카미 츠토무의 탁월한 일러스트들 덕분일 것이다.

가르강튀아의 일러스트로 유명세를 얻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는 정확하면서도 극적인 묘사를 즐겼다. 귀스타브 도레가 고전적 화풍의 신비한 캐리커쳐를 구사했다면 무라카미 츠토무는 팬시한 자신의 색깔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개성적이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풍부한 표정이 넘친다.

Gargantua, Gustave Doré, 1854
금성전집 내 실린 무라카미 츠토무의 개성적인 캐리커쳐


“웃음은 잠시 동안 농노들을 공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공포, 신의 두려움으로부터 부여된 것입니다.”

“희극은 보통사람들의 약점과 악덕을 보여줌으로써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달성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훈적 가치가 있는 선의 힘으로 봤습니다.”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 Umberto Eco, 1980> 속 윌리엄 수도사처럼 라블레 역시 인간의 본성은 유머에 있으며 눈물보다는 웃음에 관해 쓰는 것이 가치 있다고 서문에서부터 강조한다. <장미의 이름> 속 금서 목록이 이어졌다면 분명 가르강튀아도 높은 순위에 올라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금서 처분을 받았고 라블레는 상당기간 도피생활을 했다.

‘평화롭게, 즐겁게, 건강하게, 언제나 좋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이 이상적 삶이라 주장한 라블레의 팡타그뤼엘리즘 Pantagruélisme은 대부분의 우리가 추구하는 일상과 다르지 않다. 이런 가치 추구가 부차적인 것으로 뭉뚱그려지면 삶은 생존이라 이름을 바꾼다. 라블레는 스스로를 위한 축제와 지식에 대한 해갈의 욕구가 온전한 삶으로 인도해준다고 요란스럽게 말하고 있다.





@출처 및 인용/ 

가르강튀아 이야기, 프랑수아 라블레 (Gargantua and Pantagruel, François Rabelais, 1532)

금성 칼라명작 소년소녀세계문학 22권 프랑스 편, 가르강튀아 이야기 (금성출판사, 1979, 번역 김춘배, 일러스트 무라카미 츠토무 村上勉)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문학과 지성사, 2004, 번역 유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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