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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Mar 16. 2017

에스파냐 공주의 생일, 장미의 초상


영감이란 절대적일까 상대적일까? 그 자체로 압도적인 작품은 거듭되는 변주 속에 영감을 재생산하며 불멸을 얻는다.

화가들의 화가 벨라스케스는 무적함대를 필두로 한 에스파냐 황금시대의 막바지에 태어났다. 카라바조 못지않은 천부적 재능으로 명문가의 후원이 이어졌지만 당시 화가는 천한 기능직에 불과했다. 중간 계급이었던 벨라스케스는 신분 상승에 대한 세속적 야심이 컸다. 회화가 특권 계층의 전유물로 소비되던 당시 ‘국왕 전담 궁정화가’라는 타이틀은 예술적 성취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능을 신분상승의 도구로 이용했다 해서 그의 작품이 폄하될 수는 없다. 벨라스케스는 도구화한 작품을 아첨의 발판으로 쓰기보다 작품 활동의 자율에 활용했다.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오히려 계급 간 역학관계를 도드라지게 한다. 말년의 걸작 <시녀들 Las Meninas, 1656> 은 그 정점에 이른 작품이다.




시녀들, 경계선의 예술가

<시녀들>이 뜯어볼수록 매혹적인 것은 작품에 내포된 몽환적 설정 때문이다. 이 작품을 실제로 본 이라면 상상했던 것보다 커다란 화폭이 뿜는 위용에 동의할 것이다. 캔버스 속 인물들의 시선은 그림을 바라보는 이가 역으로 관람의 대상이 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림 속에 떨궈진 듯한 몰입감은 사이즈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재단된 구성에 있다.

벨라스케스는 거울을 이용해 마르가리타 공주만큼 중요할 왕과 왕비를 프레임 바깥에 배치했다. 전면에 도드라진 마르가리타, 시녀들, 난쟁이, 벨라스케스 자신일 화가는 모두 자신들을 지켜보는 국왕 부부-관람자에게 시선을 둔다. 배경처럼 묘사된 국왕 부부는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작품의 진짜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실제로 이 작품에 관한 무수한 해석 중 ‘초상화를 그리는 국왕 부부를 방문한 마르가리타 공주’라는 설정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배경에 배치한 문과 거울은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뒷걸음질 칠수록 공간감은 깊어지며 그림 속 회랑에 들어온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보이는 대상과 관람하는 대상의 시점이 모호한 이런 회화 양식은 당대에선 파격적인 것이었다. 기법 자체는 치밀할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작품이 내포하는 이야기는 화가의 상상일지, 실제에 대한 관찰일지 경계를 허물며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시녀들 속 인물들 (https://en.wikipedia.org/wiki/Las_Meninas)




탐미주의자가 그려낸 바로크 궁정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에스파냐 공주의 생일>은 문장으로 그려낸 바로크 궁정화이다.

남국의 나른한 오후, 축제와 종교재판의 비슷한 광기, 냉혹한 귀족과 무지한 열정에 도취된 난쟁이가 집착적일 정도로 섬세하고 탐미적으로 묘사된다. 치밀한 묘사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사건이 없음에도 불안한 긴장감이 떠돌게 한다.

에피 라다가 일러스트를 그린 <에스파냐 공주의 생일>은 원전의 축약된 부분을 고전적 화풍으로 채웠다. 운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스카 와일드의 수려한 문장이 훨씬 아름답게 느껴진다. <살로메 Salomé, 1894>처럼 비어즐리가 이 작품의 일러스트를 그렸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만큼 나른하고 파괴적인 이미지로 채워지지 않았을까 내내 아쉽다.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로 그린 종교화 https://brunch.co.kr/@flatb201/85





햇빛 눈부신 오후, 달콤하다 못해 어지러운 꽃향기로 가득한 왕궁 정원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해있다. 놀이의 주인공은 오늘 열두 살이 된 고귀하고 아름다운 공주님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타고 오르는 높은 창가에는 슬픈 표정의 왕이 서있다. 몇 년째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고 있는 그는 공주와 그녀를 둘러싼 귀족들의 은밀한 시선을 두루 지켜본다. 공주가 시선을 돌렸을 때 차림새만큼 그림자 같은 왕은 이미 교회당으로 향한 후다.

음울한 아버지는 금세 잊은 채 공주는 놀이에 몰두한다. 아버지가 경계하는 삼촌-아라곤의 돈 페드로는 언제나 자신을 즐겁게 해 준다. 화려한 투우에 이어 앙증맞고 섬세한 인형극이 펼쳐지고 집시들은 화려한 춤을 선보인다. 흥겨운 춤판에는 생경할 정도로 추한 난쟁이가 섞여있다. 난쟁이는 공주의 생일 파티에 구경거리로 끌려온 깊은 숲 속 숯장수의 아들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공주는 장미꽃을 던져주며 난쟁이의 춤을 다시 보고 싶어 한다.

공주가 자신을 좋아한단 기쁨에 휩싸인 난쟁이는 장미꽃에 입을 맞추며 행복한 몽상에 사로잡힌다. 공주와 함께 숲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그녀의 금발 같은 반딧불이부터 붉은 딸기꽃까지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 치장해 숲의 여왕으로 만들어줄 텐데.


몽상에서 깨어난 난쟁이는 정원에 홀로 남겨졌음을 깨닫는다. 다시 한번 공주가 기쁘게 웃어 보일 수 있는 춤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에게 함께 숲으로 가자고 말하기 위해 난쟁이는 넓은 궁전을 헤맨다. 수많은 회랑을 지나치다 난쟁이는 괴상하고 끔찍한 모습의 괴물을 발견한다. 괴물은 난쟁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뒷걸음질 치면 똑같이 뒷걸음질 쳤다. 괴물이 들고 있는 장미꽃조차 난쟁이가 들고 있는 꽃과 똑같다. 난쟁이가 난생처음 보는 거울은 추레한 곱사등이 괴물이 난쟁이 자신임을 깨닫게 한다. 공주를 기쁨에 넘쳐 웃게 한 것이 끔찍하게 추한 자신의 생김새라는 것도.

공주와 친구들은 장미꽃을 뜯고 조그만 심장을 쳐대며 괴로워하는 난쟁이를 발견한다. 난쟁이가 좌절할수록 그들은 더욱 깔깔댄다. 공주는 난쟁이에게 다시 춤을 춰보라 명한다. 그런데 흐느끼던 조그만 난쟁이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난쟁이를 살펴본 시종장이 고한다.


“공주 전하, 공주님의 난쟁이는 다시는 춤추지 않을 것입니다.

애석한 일이군요. 하도 못생겨서 폐하라도 웃겨 드릴 만했는데.”

“왜 다시 못 추는데?” 

공주님은 웃으며 물었습니다.

“심장이 터져 버렸거든요.”

얼굴을 찡그린 공주는 장미꽃 같은 입술을 예쁘게 오므리며 경멸을 나타냈습니다.

“앞으로 나하고 놀러 오는 사람은 심장을 못 갖게 해.”

이렇게 외치고는 정원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공주님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아했고, 당대의 다소 거추장스러운 유행에 따라, 가장 고상한 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드레스는 회색 공단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치마와 잔뜩 부풀린 소매는 은실로 촘촘히 수 놓였고, 빳빳하게 조인 동의에는 자디잔 진주들이 줄지어 박혀 있었습니다.


피카소, 라벨 등처럼 오스카 와일드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받은 영감을 서사적 이미지로 차용했다. 마르가리타를 비롯해 부르봉의 엘리자베트를 왕비로 맞이한 필리페 4세, 그의 정적이던 아라곤의 돈 페드로 등 실존 인물을 떠올리게 되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알려졌다시피 마르가리타 공주는 어린 시절부터 정기적으로 정혼자에게 보내기 위한 초상화를 그렸다. 오스카 와일드가 관음 하는 스페인 궁정은 윤기 도는 묘사에도 냉랭하기 그지없다.

아름다운 딸은 사랑하는 이의 유산이자 상실의 흔적이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왕은 공주를 방치한다. 순수한 애정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한 공주는 혈통적 냉혹함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녀가 난쟁이에게 꽃을 던진 것도 여흥에 대한 격려라기보다 자신의 에티튜드에 도취된 유아적 감성일 뿐이다. 우연의 이기심은 순진하기에 더욱 잔인하게 돌아온다. 최소한의 연민조차 없는 공주의 명은 그녀가 살아왔고, 살아갈 세계의 규칙이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리타 공주 1654, 1655, 1656, 1659  (https://en.wikipedia.org/wiki/Margaret_Theresa_o)


후안 마조 Juan del Mazo가 그린 마르가리타공주 1660, 1669 (https://en.wikipedia.org/wiki/Margaret_Theresa_of_Spain)


서구권 문학에서 빈번히 볼 수 있듯 난쟁이들은 귀족의 소모품이었다. 이들은 여흥을 위한 어릿광대로, 때로는 체벌용 대역 학우나 애완동물로서 기능했다. 

벨라스케스는 빈틈없이 짜인 왕궁의 풍경에 종종 이물스러운 존재-난쟁이들을 등장시켰다. 이런 대비는 세속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그린 것 아닐까? 난쟁이들은 사라졌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음침한 기운은 경직된 에스파냐 궁전의 내실 못지않았다. 숨 막히는 시대적 관습 속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분방함도 생경하고 이물감 넘치는 기질이었을 것이다.

벨라스케스와 오스카 와일드의 난쟁이는 관람자의 조롱과 감탄 사이 어디쯤에 부유할, 스스로의 자의식을 형상화한 것처럼 느껴진다. 타인이 보기엔 기괴한 이형의 존재지만 스스로에게 위엄을 부여하고 당당한 예술가의 자의식 말이다.





@출처/

에스파냐 공주의 생일, 오스카 와일드 (A House of Pomegranates - The Birthday of the Infanta, 1891)

에스파냐 공주의 생일 (주니어 파랑새, 2006, 번역 박수현, 일러스트 에피 라다 Effie Lada)

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 공주님의 생일 (열린책들, 2015, 번역 최애리)


시녀들, 디에고 로드리게즈 데 실바 벨라스케스 (Las Meninas,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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