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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n 20. 2018

룰루와 끼끼,
귀여움이 세상을 구할거야!


좋아하는 새라고는 치킨 뿐이었는데 최근 ‘펭귄’에 집착하고 있다.

새벽에 무심코 이원영 박사의 TV특강을 봤는데 다음날 팟캐스트를 들으며 구글링을 하고 있었다. 허둥지둥 호주 여행사진을 뒤져보았지만 리틀 펭귄 퍼레이드 대신 음주에 쩐 사진들만 남아있어 울적해지기도 했다.

친구는 차라리 아이돌을 파라고 했다.


#정진우 연구원 남극일기 https://brunch.co.kr/@jinwoojung81


#원영 연구원 남극일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08


귀여움을 배반하지 않는 무해함이 좋다.

물론 적자생존의 자연에 동화 같은 해피엔딩은 없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생김새만큼 생태가 매력적인 종이다. 인간 등장만으로 심박수 요동치는 쫄보지만 호기심에 겨워 근성 있게 쫓아다닌다. 바다와 대륙을 가로지르며 추위에도 녹지 않는 사회성으로 혹한을 이겨낸다.

특히 스스로를 갈아 넣는 엄청난 희생 육아는 매번 찡했다. 마음에 드는 암컷에게 꾸준히 조약돌을 선물하던 수컷은 고통스러운 육아도 똑같이 분담한다. 이 무슨 메트로폴리탄적 라이프스타일인지 게이 부부도 있다.

뒤뚱뒤뚱 귀요미부터 망충한 포커페이스까지 당최 귀엽지 않은 종이 없다!

아, 진짜 귀여움이 세상을 구할 건가 보다. 어벤저스 꺼져라.

동네방네 사람 구경 나선 황제펭귄들ㅋㅋㅋㅋㅋ (남극의 눈물, MBC)




추위 타는 펭귄

시작부터 폭주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펭귄은 <에이브 전집>의 ‘룰루’와 ‘끼끼’였다.

일러스트레이터 야마다 사부로가 그린 <룰루와 끼끼 ながい ながい ペンギンの話, 1957> 속 남극은 꼼꼼한 디테일로 동화적 판타지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반면 함께 수록된 <무시카, 미시카 北極のムーシカミーシカ, 1961>의 일러스트레이터 세가와 야스오는 낭창한 이미지와 여백으로 광활한 북극을 상상하게 만든다. 

검색해보니 펭귄 연구원 중에도 이 동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동서문화사 삼총사 https://brunch.co.kr/@flatb201/103

긴 긴 펭귄 이야기, 북극의 무시카 미시카, 에이브 문고


재채기 잦은 룰루와 추위 타는 끼끼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어린 펭귄들이다. 인간을 거대한 펭귄인 줄 오해하기도 하고, 다정한 어린 고래의 도움도 받고, 천적 갈매기와 추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문장만으로 눈이 아린 아름다운 풍광 위로 매일의 모험이 지나간다.


..들판을 정신없이 걷고 있는 동안에 룰루의 숨결이 얼어붙어서 얼굴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얼음산 주위에 분홍빛 물결이 한층 더 힘차게 흔들렸습니다. 그 근처에 작은 새우 떼가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인화라는 전통적인 기법과 동화적 판타지가 가미되었지만 실제 생태에 충실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어두운 현실에 관한 감상적이고 짧은 이야기가 선호되던 시기, 작가인 이누이 도미코는 유쾌하고 능동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긴 동화가 읽힐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룰루와 끼끼>는 긍정의 대답으로 돌아왔다.

야마다 사부로는 꼼꼼한 디테일로 판타지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금지된 우정을 원하는 북극곰

우리의 예상과 달리 펭귄은 남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주에도 아프리카에도 있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그 흰 곰, 북극곰은 이름대로 북극에만 있다.

에이브 판본에 함께 실려 있던 <무시카, 미시카>는 과학적 고증에 좀 더 애썼다. 아빠곰이 새끼를 물어 죽이기에 홀로 육아하는 엄마곰이라던지, 흰 곰이 아닌 ‘북극곰’이라는 정확한 명칭은 모두 생태학자의 자문이라고 한다. 과학적 사실에 맞추기 위해 아빠 곰 ‘무’는 필연적으로 먼 바다를 여행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늠름하고 의연한 무의 모습은 아기 북극곰들의 미래를 보여준다.


..무는 저녁놀과도 같은 햇빛이 비치고 있는 바다 위를 조용히 지켜보면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곤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바다로 오직 혼자서 나서는 무의 모습은 쓸쓸하고도 용감하게 보였습니다. 


어린 펭귄이 환경에 반하는 체질을 가졌다면 어린 북극곰은 종에 반하는 소망을 품는다.

다정한 북극곰 ‘미시카’는 우연히 붙임성 좋은 아기 바다표범 ‘오라’와 친해진다. 어느 날 미시카는 엄마곰이 바다표범을 사냥해 먹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받는다. 엄마곰은 그간 미뤄왔던 진실들을 말해준다. 북극곰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선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것, 바다표범은 최고의 식량이라는 것, 때문에 오라와 미시카는 결국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털갈이하기 전 하얗고 애교 많은 오라
세가와 야스와는 여백과 단순한 라인으로 광활한 자연을 연상하게 한다
동화책인데 거침없다.. 자체 심의인지 바다표범 표정만은 너무 낙천적;; (이 바다표범은 오라 아님)


얼마 후 인간에게 생포된 미시카 앞에 에스키모 소년 ‘타야우트’가 다가선다. 미시카가 오라에게 느낀 친밀함을 타야우트는 미시카에게서 발견한다. 타야우트는 필사적으로 미시카를 탈출시킨다. 엄마곰은 생존을 위해 식량을 비축하는 것은 모든 종의 의무이지만 다른 종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미시카에겐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타야우트는 나를 보고 웃었어.’


아, 귀요미들!


북극의 여름잔치 시기가 특별한 것은 오라도, 미시카도, 타야우트도 가까이서 인사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햇빛은 조그만 무지개를 만들며 반짝반짝 춤추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다!”

“흰 새가 여름을 가져온 거야!"

..“미시카, 어른이 되는 것은 괴로운 일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북극은 어려운 일이 많으니까 ‘특별’이라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아. 에스키모는 사냥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너 같은 아기곰을 귀여워해 주려면 그것은 ‘특별’한 일이 되는 거야.”


오라는 변함없이 상냥하지만 변해버린 털 빛깔만큼 어른스럽게 인사하고 무리로 돌아간다.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미시카는 타야우트와 자신이 같은 슬픔을 품고 있음을 느낀다.

소년들은 곧 어른이 되겠지만 함께 했던 기억으로 조금은 ‘특별’한 어른이 될 것이다.




재미있으면서 유익한 동화는 많지만 <룰루와 끼끼>는 지금도 별표를 왕창 붙여주고 싶은 동화이다. 에이브 전집 수록분 외에 유일한 단행본은 절판마저 오래된 조악한 문고판이다. 혹시 암묵적인 금지 서적인가 싶었는데 그런 것 같진 않다.

이누이 도미꼬가 그린 겨울 친구들은 각자의 종들이 성실히 오늘을 채워간다.

같이 무리를 이루진 않아도 그들은 ‘함께’ 살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면 인간은 어쩌면 이렇게도 많은 흔적을 남길까 싶다. 남발되는 에코백마저 또 다른 쓰레기가 되는 현재, 생태학자들의 주된 경고는 역시 지구 온난화다.

그럼에도 펭귄과 꿀벌에게 닥친 재앙보다 코 앞의 더위가 무서운 우리는 엘사가 된 듯 에어컨을 틀어대겠지.

부질없지만 또 결심해본다. 지구에 부대끼는 인간으로서 올해는 좀 더 죄책감을 안아보겠다고.

정말 귀여움이 세상을 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v





@출처/ 

긴 긴 펭귄 이야기, 이누이 도미코 (ながい ながい ペンギンの話, 理論社, 1967, 일러스트 야마다 사부로 山田三郎)

북극의 무시카 미시카, 이누이 도미코 (北極のムーシカミーシカ, 理論社, 1968, 일러스트 세가와 야스오 瀬川康男)

에이브문고 29/88, 룰루와 끼끼 (동서문화사, 1982, 번역 김선영, 일러스트 야마다 사부로 山田三郎, 세가와 야스오 瀬川康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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