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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n 19. 2018

패딩턴, 부디 이 곰을 돌봐주세요.


마말레이드를 좋아하는, 빨간 모자와 파란 더플코트의 어린 곰.

그냥 쓰기만 했는데도 애정뿜뿜 솟아나는 이 곰의 이름은 ‘패딩턴’이다. <메르헨 전집>을 통해 처음 읽었던 <패딩턴>은 BBC 라디오 방송작가였던 마이클 본드의 첫 동화이다.

최초의 패딩턴을 시각화 한 페기 포트넘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 당시의 핫스팟 런던 동물원을 여러 차례 찾았다고 한다. 이후 여러 명의 젊은 작가군이 포트넘의 스케치를 정리하고 채색해 컬러풀한 귀요미 캐릭터로 발전했다.

초판-채색판-영화의 캐릭터
포트넘이 스케치에 참고했던 가족사진 (https://notcompulsory.blogspot.com/2017/10/illustrator-1-peggy-fortnum.html)
팝업 북 프로모션 (https://www.visitlondon.com/things-to-do/whats-on/paddingtons-pop-up-london-books)



새로 쓰는 이야기

충만한 영국적 정서는 <패딩턴>을 영국 대표 캐릭터로 만들었다. 영화도 시퀀스마다 런던 홍보 동영상인가 싶은 자긍심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은 제국주의 시대의 유물이기도 했다. 영국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제국들은 스스로를 가치 선도의 주체로 여겼다. 세계인으로서의 포부가 우습게 제국에 포함되지 않는 정체성은 모조리 부정당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역원정출산 https://brunch.co.kr/@flatb201/44

#제국주의자의 유산 https://brunch.co.kr/@flatb201/63


이런 주입 속에 성장한 세대들은 세계대전 이후 필연적으로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본격 제국주의자는 아니라도 아마도 이런 정서의 끝 세대일 본드도 과거에 대한 향수를 얼핏 내비친다.

그럼에도 <패딩턴>의 구성원들은 순혈주의의 해체를 예고한다. 앤틱 샵 주인 그루버 씨로 대표되는 이웃들은 이민자가 모델이다. 본드는 전후 다수의 러시아, 폴란드 이민자 출신 동료들로 채워진 BBC 내 풍경에서 인상받았다고 한다.

페루에 살던 어린 곰은 마말레이드 한 병을 들고 밀항한다. 런던에 매료된 어린 곰은 다소 시혜적이긴 해도 시민들의 선의 속에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영국을 대표하는 캐릭터지만 패딩턴은 사실 난민에 가까운 외국인인 것이다.

패딩턴의 큰 인기에도 당시의 영국인들이 아프리카계 왕자비를 상상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의식한 건지 모르겠지만 영화 <패딩턴>은 좀 더 공정한 각색에 힘썼다.

원작에서 암흑의 땅으로 묘사된 패딩턴의 고향 페루는 거대한 재해도 있지만 빛과 초록이 물씬한 아름다운 곳으로 그려진다. 어린 곰을 집에 들이기 위해 남편의 ‘허락’이 필요했던 원작의 메리는 영화에서는 남편에게 ‘동의’를 요구한다. 다양한 인종의 현실 친구를 가지게 된 스파이더맨처럼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는 영국마저 새로운 세대에 맞춰나가고 있다. 지금은 21세기이니까.

대충 그린 것 같은데도 포인트가 정확하게 살아있다.




부디 이 곰을 돌봐주세요.

원작에서도 영화에서도 어린 곰에게 제일 처음 연민을 품는 이는 ‘메리’이다.

목걸이에는 짧지만 간곡한 부탁이 쓰여있다.


‘부디 이 곰을 돌봐주세요. 고맙습니다. Please look after this bear. Thank you.’


2차 세계대전이 심화되면서 유럽, 특히 고립 위험이 큰 섬나라 영국은 대대적인 민간인 대피를 준비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작전 Operation Pied Piper’으로 명명된 정부 감독하에 많은 어린이들이 임시 위탁가정에 맡겨졌다. 패딩턴이 명패를 달고 임시 보호자를 기다리는 장면은 이 전시 상황을 패러디한 것이다.

메리가 어린 곰을 ‘발견’한 순간 간판이 점등된다.


공습에 너덜너덜해진 런던과 인근 섬의 어린이들은 원거주지가 적힌 이름표를 달고 영국 본토의 시골, 뉴질랜드나 미국 같은 해외로 분산 배치되었다. 피난지에 도착한 아이들은 마을회관 등에 일렬로 늘어서 돌봐줄 후견인의 선택을 기다렸다고 한다. 인도적 의도에도 비인도적이기 그지없는 절차였다.

이런 대피가 반복되면서 후견인들이 보호해야 할 어린이들을 ‘입맛대로 선택’하거나 노동에 동원시키는 폐단도 있었다. 종전 후 집을 잃은 아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전쟁 막바지에는 명패만 걸어 아이를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어린이 대피 행렬 (@BBC Primary History)


동시대 프랑스, 폴란드 어린이들은 상황이 더 나빴다. 점령군인 나치의 소년병으로 동원된 이들은 모든 전투의 제일 앞 줄, 소모용 총알받이로 쓰였다. 일본의 학도병과 전쟁 성 노예(위안부)는 국적도, 연령도 가리지 않았다.

전운이 심화되던 1931년, 중국 정부는 뜬금없이 ‘어린이날’을 제정한다. 영국보다 앞선 국가 차원의 안전조치였을까? 국가 조치는 맞지만 중국 정부의 목표는 항일전쟁에 필요한 인원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남자아이들은 소년병으로 소비되고 여자아이들은 응급조치법, 화재진압법 등을 배웠다. 이런 조치는 난징대학살 같은 홀로코스트를 거치며 얼핏 실용적으로 보였지만 자국민, 그것도 가장 약한 존재인 어린아이들을 국가가 나서 소모품으로 이용한 비인도적 정책이었다.


가난과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해 중국의 영아살해율은 일찌감치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여자아이들의 피해는 극단적이었다. 제도의 비인권성에도 기녀는 일정 부분 예인의 기능을 수반하는 직업군이다. 그러나 청대 말 집창촌은 철저히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한 사설기관이 된다. 자원이 될 여자아이들은 넘쳐났다. 예인으로서의 창기는 당연히 드물었고 기예가 아예 없는 기생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창기는 ‘삼삼 三三’이라고 불렸는데 기본적인 일차 접대에 3원, 이차 접대인 성관계에 3원만 내면 되었기에 붙여진 비속어였다. 집창촌에서 한때 수수한 쪽빛 치파오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유는 ‘여학생 느낌’을 원한 성매매자들 때문이다. 쪽빛 치파오는 당시 중국 여학생들의 교복이었다.

아, 정말이지.. 시대불문, 국적불문, 특히 극동아시아 삼국, 어쩜 이렇게 한결같은지!

1930년대 중국의 여학생들



기쁘고도 떨떠름한 감정이 뒤섞인 채 북미회담 뉴스를 봤다.

‘이곳까지 오는데 힘들었다’는 김정은의 소회가 뭉클하면서도 또라이와 또라이라 통하는 걸까 싶은 의문이 거둬지지 않는다. ‘용기 있는 자는 평화를 선택한다’는 트럼프의 자기 자랑에는 더욱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적 쇼라 할지라도 평화라는 가치 수호를 누가 가볍게 볼 수 있을까?


지겹다 못해 진부한 일상은 작은 균열에도 우습게 부서진다. 전쟁이 최악의 세계관인 이유를 댈 필요 없을 것이다. 언제나 약자들-특히 여성과 어린이가 가장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다. 그럼에도 약자들이 가장 먼저, 더 약한 이들의 아픔을 헤아린다. 패딩턴을 지나치지 않은 메리처럼, 수요집회의 할머니들처럼, 세월호 유족을 위로하는 광주 민주화운동 유족처럼.

대한민국의 반쪽-가장 비인도적 국가 중 하나인 북한마저 스스로 드리운 장막을 걷으려 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다시 쓰이는 동화처럼, 다짐이 아닌 진짜 협치가 필요한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패딩턴이라 불린 곰, 마이클 본드 (A Bear Called Paddington, 1958, Michael Bond, 일러스트 페기 포트넘 Peggy Fortnum)

메르헨 전집 45/55, 아기곰 패딩튼 (동서문화사, 1982, 번역 신동춘, 일러스트 페기 포트넘 Peggy Fort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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