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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Nov 30. 2018

백조왕자, 소실점


새벽에는 어떤 것도 조금 쓸쓸하게 느껴진다. 홀로일 때 포착되는 미세한 소리가 있다.

모바일 게임 ‘모뉴먼트 밸리’는 그런 새벽의 분위기가 충만하다. 되풀이해도 재미있으면서 언제나 애틋하다. 철학이 무용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이다.

두 번째 모험의 주인공 ‘로’가 홀로 나아가야 할 딸을 걱정하자 안내자는 격려를 보낸다.


‘고독은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합니다. Solitude brings its own perspective.’


동화 속 소년들은 대부분 모험을 떠나고 소녀들은 인내심을 종용받는다. 지난한 시간만이 소녀들에게 허락된 모험이다. <백조왕자> 속 엘리자는 황금 의자의 시간에서 내려와 낯선 곳에 홀로 선다. 소망을 위해 그녀는 스스로 고립되어야 한다.

안데르센은 전혀, 조금도, 절대 의도치 않았겠지만 <백조왕자>는 페미니즘적 함의를 대입해 보면 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열두 명의 아이.. 문장만으로도 징그러워 소름이 돋는다. 아무리 강건한 멘탈과 체력을 지닌 여성이라도 열두 번의 출산이 수월할 리 없다. 다산의 역사는 실제로도 퍽 길게 계승되었다. 동화에서는 힘겹게 얻는 귀하디 귀한 딸이 현실에선 아들을 낳기 위한 징검다리인 경우가 더 흔하다. 동화도 현실도 모성애를 강요하고 연민을 착취한다. 낙후한 역사를 증명으로 내세우는 이들에게 단언할 수 있다. 그녀들은 모두 망가져버렸다고. 그런 착취가 비약이라 주장하는 당신이야말로 그 착취를 딛고 성장한 괴물이라고.

#백조왕자, 소실점 https://brunch.co.kr/@flatb201/216

#백조왕자,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217




관능의 조건, 앤 이본 길버트

<백조왕자>는 <인어 공주>만큼이나 묘사가 서사를 이끄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의 전집 속 이미지들이 워낙 강렬해 해리 클라크 외에는 딱히 좋아진 일러스트는 없었다. 기억 속의 전통적 분위기를 충만하게 느끼게 해 준 작품은 앤 이본 길버트의 일러스트였다. 상업 광고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다수의 작품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Frankie Goes to Hollywood의 앨범 커버는 이 곡의 훅만큼 기시감 드는 이미지 일 것이다.

Frankie Goes to Hollywood, Relax (ZTT Records, 1983)


인지도를 높여가던 길버트는 프리랜서로 독립 후 본격적인 단행본 작업을 이어간다.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같은 관능미 넘치는 스타일을 돋보이게 해 줄 고전 동화들을 주로 작업했다. 섬세하고 정교한 터치, 특히 <드라큘라>의 현대화된 고딕 이미지는 나른한 에너지가 폭발한다.

괴리감 있는 요소의 충돌이 섹슈얼한 긴장감을 고조시킴을 잘 알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앤 이본 길버트의 일러스트가 실린 <Dracula, 2009>


길버트가 그린 <백조왕자>는 화사한 프레스코화를 보는 느낌이다. 물결치는 곱슬머리와 꽃 같은 뺨을 지닌, 보티첼리의 주인공 같은 인물들은 색연필 만으로 그려졌다. 화사한 인물들은 집착적인 오브제들-반복되는 배경, 프레임처럼 쓰이는 곤충 이미지 등이 어우러지며 고전 동화가 내포한 음침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계모의 불만과 친부의 방조로 열한 명의 아들은 백조가 되어 내쳐진다.
계모는 홀로 남은 엘리자에게 마저 저주를 심는다.
순도 높은 엘리자의 신앙심은 두꺼비의 독마저 아름다운 양귀비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끝내 성에서 내쳐진 엘리자는 어두운 숲을 헤매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오빠들과 조우하게 된 엘리자.
저주에 걸린 오빠들은 자정부터 동트기 전까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거친 바다를 건너가며 오빠들을 자신이 되돌리겠다 결심한 엘리자.
요정의 조언대로 저주를 풀 쐐기풀 스웨터를 짜던 그녀는 우연히 사냥을 나온 왕의 눈에 띄어 궁으로 가게 된다. (왕 한껏 느끼하지 않나요? 너무 약탈혼 분위기인 것;;;)
주변의 억측과 오해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스웨터 뜨기에만 매달리던 엘리자는 마녀로 몰리게 된다.
화형 당하기 직전 그녀가 던진 스웨터에 백조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다정한 막내 오빠의 한쪽 팔을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엘리자가 짜는 것은 자신의 고독이다. 쐐기풀 스웨터는 그녀의 언어이다.

소망으로 시작했건만 너무 많은 말들이 그녀의 침묵을 투쟁으로 만든다. 그녀를 사랑한다 해서 그녀를 온전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왕의 애정은 이해 가능한 범주에서만 지속되는 오만한 자기만족이다. 아무도 그녀를 모른다.

스스로 고립되어 힘겹게 떠낸 언어는 그나마도 가족주의를 위해 사라져 버린다. 그녀의 오빠들은 인간의 삶으로 복귀했지만 그녀의 고독은 백조들의 날개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왕의 애정, 복권된 신분, 어쩌면 오빠들의 복귀마저도 타인의 언어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른다.

족쇄처럼 보였던 고독만이 유일하게 엘리자를 이해한다.


엘리자가 긴 긴 시간 골몰했던 진짜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쐐기풀 사이사이 끼워 넣은 상념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온 마음이 녹아내리는 노을 속, 자욱한 별들로 더욱 고독한 자정, 흉포한 밤바다의 압도적인 아름다움, 조각 바위 위에서 뒤집어썼던 물보라.. 그 풍경들이 엘리자에겐 지나간 시간일 뿐일까?

그녀는 사실 온전히 자신을 위한 날개옷을 짜고 싶지 않았을까?

고독이 주문이 되듯 부유하던 상념은 한 곳으로 모이며 내밀한 소망을 태운다. 트로피 같은 삶에 안주했어도 술렁거리는 노을을 볼 때마다, 청량한 달빛을 받을 때마다 엘리자는 남몰래 상기했을 것이다. 지상이 아닌 곳의 시간을.


무수한 여성들이 고독과 함께 자기만의 소실점을 찾아왔다.

대부분 엘리자처럼 침묵과 함께 접어 넣고 말지만, 그 점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끝끝내 떠난 여성도 있다.

엘리자에게는 왕의 오해가 그의 애정만큼이나 중요치 않았을지 모른다. 

고독의 언어를 깨우친 여성이라면 분명 프린스 차밍보다는 활공의 시간을 원할 테니까.





@출처/

야생 백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The Wild Swans, Hans Christian Andersen, 1838)

The Wild Swan (Barefoot Books, 2005, 일러스트 앤 이본 길버트 Anne Yvonne Gilbert)


모뉴먼트 밸리 Monument Valley (Ustwo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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