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다음에, 애거서 크리스티와 피터
구태의연한 줄 알지만 바람이 서늘해지면 호빵 아.. 아니 추리 소설이다.
스릴러, 로맨스, SF, 누아르, 오컬트, 액션, 코미디.. 어디에 붙여도 그럴싸해지는 장르 특성상 질릴 틈이 없다. 독자마다 좋아하는 작가나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이 여정을 ‘아가사 크리스티’로 시작한 이들 많을 것이다.
지난겨울 내내 영문판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를 읽었다. Mjin님의 포스트를 읽다 e-Book을 사재기했다. 영문 포와로가 불어까지 남발할 때면 외국어의 압박에 약간 움찔했지만 새삼스러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At Bertram's Hotel, 1965>, <The Hollow, 1946>까지 끝내고 나니 고새 지쳐서 좋아하는 단편집을 골랐다.
그리고 요즘은 e-Book을 내팽개친 채 고릿적 번역본을 읽고 있다. (반전 따윈 없는 익숙한 결말.. 한심;;)
#아가사 크리스티, 메밀국수 https://brunch.co.kr/@minjbook/6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할 애거서 크리스티지만 성인이 된 후 다시 읽어 보니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정말 독보적이란 생각이 든다.
197, 80년대 전집을 읽고 자란 세대라면 ‘해문 출판사’의 빨간색 전집에 집착해보았을 것이다. 정확한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나처럼 돌려 읽기가 폭풍 유행되었다. 꽤 오래갔던 이 유행은 곧 다른 시리즈들-주로 영미권 탐정 추리물을 우후죽순 동반 유행시켰다.
산뜻한 빨간색 바탕, 또렷한 명조체 제목의 이 아담한 문고판은 이름 자체가 장르이며 브랜드인 크리스티를 적극 활용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제목 작명은 특히 탁월한 것 같다. 워낙 다작 작가다 보니 서사나 트릭이 가끔 겹칠 때는 있어도 매번 각 권의 제목이 뿌리는 호기심에 저항할 수 없다. 기하학적이거나 추상적인 커버 이미지는 은근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용돈으로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처음 사모으기 시작할 때는 80권이나 될 줄 몰랐다. 전권을 모으진 않았지만 단편집을 특히 좋아했기에 <죽음의 사냥개>, <리스터데일 미스터리>, <쥐덫>, <검찰 측의 증인>, <패배한 개>,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리가타 미스터리>, <헤라클레스의 모험> 등은 종종 들여다본다.
해문의 크리스티 전집이 워낙 인기 높았어도 정식 완역본은 ‘황금가지’에서 나온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015>이다.
수록작 구성은 두 판본 모두 재편집되었으며 번역도 예스런 어투 외에는 둘 다 고만고만한 것 같다. 황금가지 판본의 의역은 종종 원서의 뉘앙스에서 살짝살짝 비켜가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해문 판본의 거친 직역이 의도치 않게 원서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해주곤 한다.
판형에 따른 휴대성, 북디자인 역시 익숙함 때문인지 황금가지 판본의 고급스러운 장정보다 해문 판본에서 친밀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작하는 독자라면 개정 완역본을 두고 굳이 해문 판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의 매력은 트릭 그 자체보다 ‘관계성’에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기계적이고 구조적인 트릭에만 관심 두지 않았다. 스포일러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지만 일련의 작품 속 화자나 목격자는 그런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크리스티의 장편들이 장르물답게 밀도 높은 구조 지향의 조형물이라면 단편들은 훨씬 유연한 소재와 심리 묘사, 관계성에 집중한다. 단편집마다 특징이 있는데 로맨스, 20세기를 휩쓴 영성주의를 활용한 판타지, 계급 충돌, 한정적이지만 페미니즘적 요소 등이 다양하게 쓰였다. 이런 소재들은 트릭에 비해 여전히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실종 소동’으로 회자되듯 크리스티의 첫 번째 결혼 생활은 좋지 않았다. 진보적인 집안에서 독려받으며 자란 그녀지만 인생의 첫 열패감은 집착과 우울로 발현되었다. 결혼 생활의 실패, 슬럼프.. 누구에게나 포진한 인생의 위기에서 크리스티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흔히 그러듯 그녀 또한 동물이 주는 온기에서 위안을 얻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개들을 사랑했고 이런 애정을 작품에 반영했다. <벙어리 목격자 Dumb Witness, 1937>가 대표적일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반려견 중 ‘피터’는 특히나 사랑받았다.
재혼을 고민하던 크리스티가 딸에게 의사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피터도 좋아하는데 왜 안 되겠어요?”
피터에게 헌정된 단편 <개 다음에 Next to a Dog>는 다작 작가인 크리스티의 필모에서 그리 주목받는 작품은 아니지만 애틋하면서도 신랄하다. 추리물도 아니며 다른 필명으로 발표한 단편이기에 19번째 단편집 <The Golden Ball and Other Stories, 1971>에 수록되었다. 황금가지 판본에서는 <강아지와 함께>라는 제목으로 <리스터데일 미스터리 Listerdale Mystery, 1934>에 수록되었는데 해문 판본의 의역 쪽이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개 다음’인 게 중요하다고요!) 해문 판본에서는 <죽음의 사냥개 The Hound of Death> 편에 수록되어 있다.
급작스럽게 사별한 ‘조이스’는 구직 중이다. 한미한 사회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직업은 입주 보모나 까다로운 노부인의 말 상대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최근 소개받은 자리는 이탈리아에서도 멋진 고장이었다. 그럼에도 조이스는 런던에서 근거리 출근이 가능하지 않은 일자리는 모두 포기한다.
그녀는 ‘테리’를 두고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다. 테리와 조이스는 서로에게 ‘유일하다’.
발랄한 어린 강아지에서 시력마저 침침한 노견이 되기까지 테리는 조이스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해왔다. 슬픔과 기쁨의 무게를 나눠 온 테리만이 조이스가 유일하게 지키고자 하는 가치이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월세집이나마 머물 수 있는 건 사람 좋은 집주인 반스 부인 덕분이다. 그러나 반스 부인의 주정뱅이 남편은 또 실직했고 어려운 이들이 나눌 수 있는 온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조이스는 자신에게 집착해온 아서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녀도 알고 있다. 이 결혼이 매음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러나 테리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감내할 생각이다. 자신만 포기하면 모두를 지킬 수 있다. 반스 부인은 조이스가 좋은 조건의 결혼을 하는 줄 알고 기뻐한다.
그때 해바라기 중이던 테리가 테라스에서 떨어진다.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동물병원에 도착한 조이스는 고맙다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다. 행인의 도움으로 귀가한 조이스에겐 이내 테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테리가 죽자 조이스는 곧바로 청혼 수락을 철회한다.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에 까였음을 이해할 수 없는 아서는 펄펄 뛰지만 이제 조이스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아니 가야 할 곳을 모르겠다.
기계적으로 직업소개소에 면접을 보러 간 조이스는 나이 든 숙모와 엄마 잃은 아이를 돌보는 입주 보모직에 채용된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서려는 순간 예비 고용인이 말을 건넨다.
“저.. 난 참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알고 싶어서.. 당신의 개는 무사한가요?”
그제서야 조이스는 그를 바라보았다. ..머리는 잿빛으로 세어가고 있었고, 풍상을 겪은 듯 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 약간 구부정한 어깨.. 그리고 그 갈색 눈동자는 수줍어하는 착한 개의 눈동자를 닮았다. 정말 개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어. 조이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테리는.. 죽었어요.”
“오, 저런!”
그는 단 한마디뿐이었다. 하지만 조이스에게는 그 ‘오, 저런!’ 하는 소리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따스한 위로의 말 같았다. 그 간단한 말속에는 말로는 옮길 수 없는 모든 감정이 담겨있었다.
조이스의 예비 고용인 앨러비 씨는 테리의 사고 앞에 황망한 그녀를 도와주었던 친절한 행인이었다.
인기 시리즈의 작가들이 그러듯 애거서 크리스티 역시 다른 필명까지 써가며 장르 확장을 시도했다. 여성 작가란 이유로 연애소설로 폄하돼 온 이 작품들은 관계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드러난다.
<개 다음에>는 당시 여성에게 할당된 사회적 위치와 한계에 따른 인물의 심리 변화가 전개된다. 전반부 세밀하게 묘사되는 조이스의 곤궁함은 낭만적 주인공이 일시적으로 겪는 고난이라기보다 인간이기에 품게 되는 구질함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자기 존엄성, 그 존엄성을 내던져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애착이 현실적이면서도 애틋하다.
굳이 로맨스의 측면에서 본다면 열린 결말이지만 ‘개를 닮은 훈남’ 등장에 살짝 낭만적인 기대도 걸게 된다.
‘오.. 저런’
저 짧은 한 마디에 조이스가 무너진 건 ‘같은 종류의 상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저런 종류의 상실을 이해하는 이들은 부연 없이도 알 수 있다. 그 어떤 단어도 무의미하고 위로가 될 수 없음을. 그래서 딱히 특별한 말을 보태지 못한다.
“슬프긴 하겠지. 그래도 개가 죽었다고 저러는 건 난 이해가 안 되더라.”
인간 외의 존재에 대한 애착을 인정하지 않거나 이해 못 하는 이들은 퍽 흔하다. 그들 모두 평범하고 정말 좋은 사람들이기까지 하다. 평소 사려 깊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한정된 상실 감각을 드러내는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비아냥대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조금 부럽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저 온전한 상실을 겪지 못한 행운아들이니까. 그러나 무의미한 단어라도 애통 앞에 필요한 것은 위로뿐이다.
분량상 급작스럽게 마무리되는 느낌은 있지만 <개 다음에>는 상실에 관해 말한다. 남은 날들의 조이스는 여전히 테리로 인해 얻은 인연보다 테리와 함께 나눈 시간이 더 소중할 것이다.
8월이 정말 싫다. 눅진한 더위는 평생 익숙해지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없다.
나의 개가 죽은 것도 8월이었다. 수년 전이건만 매해 8월이면 나의 개가 떠난 시간에 내내 뒤척인다.
마음의 준비 같은 건 참 허약하고 무용했다.
#혼자 가야 해, 행복의 퍼센테이지 https://brunch.co.kr/@flatb201/84
선풍기 바람에 날리던 커튼, 여름 햇빛이 부서져 내리던 유난히 귀엽던 별무늬 이마, 곱슬거리는 털보다 보드랍게 기대 오던 권태로운 애정, 밥을 남겨서 살짝 타박했었고.
마지막 숨이 빠져나가며 툭- 떨어지던 감촉, 날이 새고도 여전하던 온기.
때때로 불가사의한 예감이 선물하는 순간이 있다.
헤어지던 날의 모든 순간,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난다는 게 유일한 위로이다.
나의 개가 죽은 후 첫 번째 기일, 종일 8월답지 않게 시원하고 청명한 바람이 불었다.
한심하게도 그 바람을 나의 개가 보내는 위로처럼 느끼고 말았다.
우리 둘 다 더운 걸 너무 싫어하니까.
함께 돌던 공원에서 조금 울다 웃었다.
때로는 끝나지 않는 애도가 우리의 나머지 시간을 지탱시켜준다.
@출처/
개 다음에, 애거서 크리스티 (The Golden Ball and Oher Stories; Next to a Dog, Agatha Christie, 1971)
해문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77권, 죽음의 사냥개; 개 다음에 (해문,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