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페에서 책 읽기 May 13. 2016

파랑새, 신기루의 이름


무형의 가치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의 욕망이다. 아니,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이 가치들을 다른 이름으로 분류해둔 것일까? 누구나 희망하는 행복조차도 결정된 한계란 없다.

제목 자체가 관용어구와 같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는 희곡이 원전이다. 캐릭터의 레퍼런스까지 표기해둔 마테를링크의 집착적인 설정과 중의적 표현은 상상을 증폭시킨다.

보통 ‘주변의 행복’에 관한 우화로 각인되어 있지만 정작 마테를링크가 주목한 것은 잡을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선망과 좌절이다. 이런 철학적 사유는 의인화된 사물과 환상 속 여정을 통해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묘사된다.


원전이 가진 모호함과 중의적인 표현들 때문일까? 작품의 인지도만큼 많은 판본이 있지만 아동 대상 도서에서 희곡 형식의 단행본은 드물 듯하다. 금성 전집에도 3인칭으로 각색된 동화가 코마미야 로쿠로의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실려있다.

담백한 수채화풍 아래 단순한 이목구비로 묘사된 캐릭터들, 투명하게 겹쳐진 오브제들을 이용한 밀도, 코마미야 로쿠로의 함축적인 묘사는 오히려 다양한 표정을 전달한다. 중의적 상징으로 이루어진 작품 분위기와도 썩 잘 어울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틸틸과 미틸의 일본식 표기이지만 이 글에선 금성 전집분의 표기를 따르겠다.

(괄호 속은 원전의 명칭, 발췌한 문장은 모두 지만지 번역분을 따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가난한 나무꾼의 자녀 치르치르(틸틸)와 미치르(미틸)는 창문 너머 흥겨운 부잣집을 구경하고 있다. 즐거운 파티를 상상하던 그들 앞에 어쩐지 이웃집 벨랑고(베리륀) 아주머니를 닮은 요정이 나타난다. 치르치르의 새를 살펴본 요정은 자신이 찾는 새가 아니라며 실망한다. 그녀는 자신을 대신해 딸을 위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요정이 준 모자를 통해 남매는 사물들의 영혼을 볼 수 있게 된다. (프랑스어 voir는 ‘보다’와 ‘알다’로 사용된다. 사물의 영혼을 보게 되면서 이해가 가능해진 것을 의미한다.) 집안의 물건들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후 개(틸로)와 고양이(틸레트), 남매와 함께 파랑새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원전을 보면 마테를링크는 구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스타일을 롤모델까지 상세하게 서술해놓았다.


남매가 요정의 딸을 방문하러 간 사이 고양이가 사물들을 선동한다. 고양이는 모든 사물과 원소가 조금이나마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인간이 알지 못한 영혼을 지녔기 때문임을 상기시킨다. 파랑새를 찾아내면 이들의 영혼은 인간에게 영원히 속박되게 되어있다. 자신의 자유가 무엇보다 소중한 고양이는 이 여행을 방해하려 한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남매는 빛(빛)의 도움을 받아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여행마다 힘겹게 얻은 파랑새는 죽거나 변해버린다.

추억의 파랑새는 검게 변해버린다.
숲의 파랑새는 잡을 수가 없다. 인간에게 피해 입은 떡갈나무와 숲의 정령들은 남매를 공격한다.
밤의 파랑새, 밤이 열어준 문 너머엔 수 천 마리의 새가 있었지만 사로잡는 순간 모두 죽는다.
독립적인 자신을 지키고자 여행을 방해하는 고양이. 다정한 개와 달리 끝까지 자격이 있는 만큼만 사랑하겠노라는 새침한 매력을 가졌다.
'뚱뚱한 행복,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행복, 모성애'와의 만남을 지나 도착한 미래의 왕국. 남매는 이곳에서 미래에 태어날 동생을 만난다.


미래의 왕국을 끝으로 남매는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정령들과 헤어지기 전 진짜 파랑새를 구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치르치르에게 빛이 위로하듯 말한다.


“..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어… 파랑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해. 혹은 그것을 새장에 넣으면 색깔이 변한다든가…”


크리스마스 아침, 남매는 엄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깬다. 어리둥절한 남매에게 이웃집 벨랑고 아주머니가 찾아온다. 그녀는 병든 딸을 위로하기 위해 치르치르의 새를 원한다. 어쩐지 더욱 파래진 새를 치르치르는 흔쾌히 건네고 기운을 차린 소녀가 남매를 찾아온다. 그 순간 파랑새는 그들 사이를 빠져나와 날아가버린다. 치르치르는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며 울고 있는 소녀를 달랜다.

파랑새를 찾아 떠난 1년간의 여정은 모두 하룻밤의 꿈이었을까?
파랑새를 통해 행복이 가진 각각의 무게를 확인한다.



진리가 절대적이라면 가치는 상대적이다. 행복이란 가치의 무게감은 시시각각 변한다. 누구보다 흥겨워보이는 ‘뚱뚱한 행복’은 물질적으로만 충족된 존재이기에 ‘빛’의 완전한 순도를 견딜 수 없다.

이런 성찰들은 상징주의 대표작가다운 은유와 의인화를 통해 캐릭터 소개부터 중의적인 의미 부여까지 탁월하게 사용된다. 몇 개만 살펴보면,


..설탕의 영혼은 후추의 영혼보다 흥미롭지 않아.


..모든 돌들은 값진 거야. 하지만 인간은 그중 몇 개만을 볼 뿐이지.


..저 무서워하는 잠옷 차림의 부인은요?

  자신의 병을 깬 우유란다..


..일반적으로 행복들은 아주 친절하지만 몇 명은 가장 커다란 불행보다 더 위험하고 더 사악하단다.


..저들은 지상의 가장 뚱뚱한 행복들인데..(중략).. 파랑새는 아마도 이들 중에서 잠깐 방황했을지 몰라.. 저들은 흉악하진 않아. 비록 천박하고 보통은 버릇이 없긴 하지만


..틸틸: 가방에 뭘 가지고 있지? 우리에게 뭘 가져왔니?*

  미래의 동생: 난 세 가지 질병을 가져왔어. 성홍열, 백일해, 홍역…(중략)

  틸틸: 오는 건 정말 고통이겠구나!

  미래의 동생: 선택의 여지가 있어?

(*미래의 왕국에 대기 중인 아이들이 지상에 태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뭔가를 가지고 가야 한다. 남매의 예비 동생은 세 가지 질병을 준비한 것;;; 하류층에 빈번한 가난과 질병을 은유한다.)



이 작품의 교훈을 되풀이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행복이라 여겨지는 것을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때로는 금기시된 일조차 불사한다. 극 중 빛의 말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치는 찾아 헤매는 여정 안에서만 완전할지 모른다. 온전한 순수함을 찾았더라도 새장에 넣는 순간 모습이 바뀔 수도 있다.

결국 행복이란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우리가 품은 신기루의 다른 이름 아닐까?





@출처 및 인용/ 파랑새, 모리스 마테를링크 (L'Oiseau Bleu, Maurice P.M.B. Maeterlink, 1906)

금성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 16권 프랑스 편, 파랑새 (금성출판사, 1979, 번역 이준범, 일러스트 코마미야 로쿠로 駒宮録郎)

파랑새 (지만지, 2014, 번역 이용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