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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l 13. 2016

바쇼와 여우, 타인의 취향


취향이란 타고나는 것일까 젖어드는 것일까?

‘취향 존중’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넘쳐나는 몰개성이 신물 난다. 그럼에도 문화나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우위를 매기는 것엔 삐딱한 반발심이 든다.

<바쇼와 여우>는 익살스러운 우화 형식을 통해 창작자와 관람자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팀 마이어스는 초기 하이쿠가 가졌던 해학의 정서를 빌어 바쇼와 그가 정립한 세계를 소개한다. 하이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표작들은 유쾌하게 활용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팀 마이어스가 하이쿠의 정서를 차용했다면 일러스트를 맡은 한성옥은 하이쿠의 형식을 이미지로 체화시켰다. 일본의 전통 단가 하이쿠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5-7-5의 음수율이 지켜져야 하고 계절을 의미하는 ‘계어 季語’와 조사에 해당되는 ‘끊는 말 切字’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한성옥은 빈번한 부감 시점을 통해 멀리서 관조하는 느낌으로 계절의 흐름을 보여준다. 시점 자체를 계어의 일부로 활용한 셈이다. 전면에 펼쳐진 계절은 사시코가 수놓아진 듯한 프레임으로 묶인다. 이런 장면 전환이 마치 끊는 말처럼 느껴진다면 너무 끼워 맞추기 해석일까?




위대한 시인 바쇼는 후카가와 산속에서 자연을 노래하며 살고 있다. 초라한 오두막이지만 근처의 버찌는 특별히 달콤해 매년 여름을 즐겁게 해준다.

어느 늦여름, 바쇼는 벚나무에서 내려오는 여우와 마주친다. 버찌를 얼마나 먹어댔는지 흰 주둥이는 붉게 물들어 있다. 바쇼가 시인임을 알게 된 여우는 자신이 깜짝 놀랄 만큼 멋진 시를 지어온다면 벚나무를 포기하겠다고 한다.


첫 번째 만남이 있던 오월의 보름밤, 바쇼는 달빛 아래 심사숙고한 시를 읊는다.


“자두 향 풍겨 산길 위로 일순간 솟는 아침 해..”

“이봐, 친구.” 여우는 딱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자네는 시인이라고 하기엔 한참 멀었네! 내달 보름에 만나지. 그동안 좀 더 괜찮은 시가 나온다면 말이야.”



자부심에 빠져 있던 바쇼는 낙담하지만 다시 새로운 시를 고민한다.

두 번째 만남의 달밤, 바쇼는 다시 고즈넉하게 시를 읊는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든다 물소리 퐁당.

“조금 낫군.” 여우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새끼 여우들도 할 수 있어. 이제 남은 기회는 딱 한 번뿐이야.”



거듭된 퇴짜에 낙심한 바쇼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런데 마지막 만남의 밤, 커다랗고 하얀 달을 등진 채 기다리는 여우를 보자 문득 시상이 떠오른다.


‘그렇게 좋은 시는 아니지만 들려줄 만은 하겠지…’

“여름 달 위로 여우꼬리 끝처럼 흰 산봉우리.”


마지막 시를 들은 여우는 깜짝 놀라며 다시 들려주길 청한다.

지그시 눈까지 감은 여우는 잘 익은 버찌를 맛보듯 낱말 하나하나를 음미한다.

기뻐하며 돌아가는 여우에게 바쇼는 다급히 이 시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묻는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어?” 

여우는 철벅철벅 강을 건너며 소리쳤습니다.

“이 시에는 여우가 들어 있잖아!”


좋은 시란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바쇼, 그는 여우와 함께 늦여름의 버찌를 한껏 즐긴다.




일본의 황금기 에도 시대는 정서적으로도 한껏 풍요로웠다. 경제성장으로 문맹률이 낮아지자 유흥과 문화의 수준도 한층 높아졌다. 가부키, 노, 스모, 불꽃놀이 또 유럽 미술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우키요에 등 미학적 유흥이 골고루 인기를 끌었다. 짧은 단가 하이쿠는 상류층 유흥이던 집단 창작시를 해학적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초기 하이쿠는 주요 소비 계층-자본력을 바탕으로 문화 소비의 주체로 떠오르던 상인 계급의 특성을 따라 경박한 해학에 머물렀다.

바쇼는 하이쿠의 함축적인 특징을 재수용해 ‘언어의 음악화’라는 미학적 성취를 이룬다.

일본 문단을 정립한 천재 작가인 만큼 부유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바쇼는 평생 어느 곳에도 예속되지 않는 삶을 고수했다. 한성옥의 그림처럼 실제로도 에도 외곽 후쿠가와 강 근처 허름한 초막에서 자급자족하며 주류에서 비켜서려 애썼다. 이런 삶의 태도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통찰로 피어난다.


예술의 발현에 관한 탐미적이고 집착적인 작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 Thomas Mann, 1912>에선 보편적 매혹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중요한 정신적 생산물이 동시대에서 폭넓고 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저자의 개인적 운명과 동시대인들의 일반적 운명 사이에 은밀한 유사성, 아니 엄밀히 말해서 합일점이 있어야 한다.’ 

(현대문학 P.225)


바쇼를 강박에 시달리게 한 여우는 스스로의 자부심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취향을 가졌다. 여우보다 아름다운 언어를 가진 바쇼는 미학에 대한 강박으로 보편적 매력을 간과한다. 때때로 창작자와 대중의 거리는 깊이도 넓이도 종잡을 수 없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같으면서 너무 다르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들은 존재 자체로 불특정 다수를 감화시킨다.

만약 나 자신이 그 아름다움의 일부로 편입된 예술을 목격한다면, 미학적 성취를 떠나 조금 더 특별한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우리 안의 내밀함에 파장을 만드는 것이 모두 걸작인 것만은 아닐 테니까.






@출처 및 인용/ 

바쇼와 여우, 팀 마이어스 (Basho and the Fox, Tim Myers, 2000)

Basho and the Fox (Cavendish Square Publishing, 2000, 일러스트 한성옥 Oki S.Han)

시인과 여우 (보림, 2001, 번역 김서정, 일러스트 한성옥)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Der Tod in Venedig, Thomas Mann, 1912)

토마스 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현대문학, 2013, 번역 박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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