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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Jul 03. 2018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할 때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나는 많이 아팠다. 대학교 4학년 때쯤인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항상 연말이 되면 앓아눕는 연례행사(?)를 치르고 있다. 나는 그때마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다. 내가 한 해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일정량 정해져 있고 이 에너지를 1년 동안 분배해서 써야 하는데 12월을 며칠 남겨 놓고 에너지가 동이 나서 앓아 누었나 보다고... 대게 하루 이틀 따뜻한 방에 배를 깔고 누워 지내면 곧 낫곤 했다. 하지만 2015년 그 겨울에는 2주 동안 아팠다. 그리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물만 넘길 수 있었고, 앉아있을 기운도 없었다. 억지로 회사에 출근도 해보았지만 당연히 일은 할 수 없었고, 회사에서는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결국 며칠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영화 <블루 재스민> 중,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과 파산으로 정신병을 얻은 재스민


  그때 유독 심하게 아팠던 이유는 남자친구와의 이별이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의 끝은 좋지 않았다. 그 좋지 않은 끝 덕분에 멘탈이 나가면서 더 심하게 앓았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많이 불안했다. 왜 불안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릴 때 불안한 이유를 A일까, B일까 생각하고 정리하다 보면 원인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원인을 알았다는 것에서 나는 안도하며 그 불안을 잠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느끼는 불안의 원인은 특정한 하나의 이유로 좁혀지지 않는 듯하다. 나는 불안하면 잠을 잘 못 잔다는 맹점을 갖고 있다. 불안을 잠재워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불안을 잠재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장기 휴가를 냈으니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이나 읽자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집 근처 구립도서관에 갔다. 눈에 들어오는 책 5권(1회 최대 대출권수는 5권)을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눈만 뜨면 책을 봤다. 집에서 쉬는 동안 그 책을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불안한 마음을 잠시 동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몸이 나은 후에도 나는 책에 많이 집착했다. 일 때문에 바빠서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면 거기서 또 불안을 느끼곤 했다.


최인아 책방 @ 선릉,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시작된 책방 투어

  

  6월 말일까지 석사 졸업 때문에 신경을 쓰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2년 동안 억누르던 감정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것처럼 뭔지 모를 미묘한 감정들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고 불안이 찾아왔다. 불안의 원인은 역시나 모르겠다. 석사 과정을 마쳤으니 다음 단계를 준비해서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고, 꼬여버린 대인관계에 대한 잡념도 있고,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하고 싶은데 잘 안되고, 등등., 뭐가 주된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또다시 불안이라는 손님을 맞았다. 어김없이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그동안 읽으려고 모아뒀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어느새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책 속에 빨려 들어간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너무 즐겁고 모든 문제들을 잊을 수 있다. 나에겐 가장 좋은 도피처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책이다. 이렇게 책을 읽다 보면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고 쪼글아 들었던 마음에 오동통 살이 오른다. 언제 이 불안이 다시 내 마음속에서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불안이 찾아오면 난 어김없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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