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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Jul 10. 2019

일상

이건 꿈이야

오늘 잠자리가 사나웠다. 예전에 좋아했지만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던 남자가 나와 어떤 여자와 예복을 입고 싱글벙글 웃는 꿈이었다. 마치 내가 사진사가 된 것 같이, 그들의 결혼사진을 내가 찍어주는 그런 각도였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의 마음을 거절해서가 아니라 그의 비겁함에 난 늘 화가 나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화가 나 있었다. 그러다 곧 평온해졌다.


이건 꿈이야, 사실이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일순간 평온해졌고, 다시 푹 잠들었다. 잠을 자면서도 이게 꿈이구나 알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침 6시, 알람이 울리는 소리에 일어나 멍하게 천정을 바라보았다. 뭔 개꿈이야.


일어나서 씻으면서 곧 그 꿈은 잊었다. 제시간에 출근하기 위해 몸이 바빴다. 지하철에 타고나니 다시 그 꿈 생각이 났다. 왜 하필 그런 꿈일까. 나는 아직도 여전히 화가 나 있구나.


한동안 내가 그 사람에게 화가 났다는 걸 잊고 살았다. 그리고 얼마 전 취업을 하고 나서 선후배들과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1년 반만이었다. 우리가 선후배 사이이고 당연히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음에도 나는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정말 한 사람을 완전히 잊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 중에 그가 나타났다. 그는 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사람이 식당에 들어와서 나의 맞은편에 앉을 때까지 그의 얼굴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차, 우리는 오늘 만날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왜 널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는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를 보기 전까지 나 역시 한없이 밝게 웃고 농담도 건네다 그를 본 순간 차갑게 굳어졌다. 웃음이 나오지도 않았고, 웃어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내 곁을 맴돌았지만, 항상 맴돌기만 하고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는 그를, 난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그는 결국 나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했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나는 그의 생각에 시달렸다. 가지 말았어야 하는 자리였다고 후회했다. 옛 기억까지 떠오르며 그때 받았던 상처가 다시 나를 뒤집어 놓았다. 그렇게 며칠을 시달리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고 선후배로 묶여 같은 일을 하면서 마주칠 일들은 앞으로도 많을테니. 그래서 먼저 연락해 만나자고 했지만.., 결국 그는 또 나를 피했다.


뭘 기대한 걸까, 이미 피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내가 잘못된 걸까.

나의 이런 생각들이 오늘의 꿈처럼 사실이 아니라는 걸, 나의 편협한 생각과 착각이라는 걸 아는 순간 나는 평온해질까.






#30대중반 #꿈 #마음 #일상 #착각 #피하는 #사람 #비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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