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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Dec 03. 2016

할아버지와 '인숙'이

내 이름 '인숙'

  사춘기 시절, 내 이름이 싫었다. 지금은 싫은지 좋은지 자각도 없이 살지만...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옛날 분이라 이름을 그렇게 지어주신 것일까. 미취학 아동일 때 엄마가 병원에 데려가 내 이름을 접수처에 말하면 간호사들이 웃곤 했다. 난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내 이름이 촌스러운 이름이란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생 때 이름 탓에 여인숙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다.


  낯선 길을 헤매다 발견한 '여인숙' 간판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아직도 서울 한복판에 여인숙이 있는 거 자체가 더 신기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올해가 3주기다. 언제나 말이 없는 할아버지. 왜 그 많은 손주들 중에 내 이름만 이렇게 지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엄한 아버지보다도 더 엄했다. 엄한 아버지계의 끝판왕 정도 되시는 분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조차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치매로 6년,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직장암 말기였다. 암으로 많이 아프셨지만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안 하실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분이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으면서 감정 표현을 하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서로를 많이 사랑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사랑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온전히 느껴졌다. 아버지는 6남매 중 장남이다. 할아버지는 나머지 다섯 자식을 치매로 잊었어도 아버지만은 잊지 않았다. 치매가 찾아오면서 감정에 솔직해진 할아버지는 아버지 이름만 들어도 환하게 웃어 보이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요양원으로 옮기신 할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시기 위해, 아버지는 한동안 엄마에게 애원했단다. 모시기로 결정한 후 엄마가 얘기해줬다.


"엄마, 대단하다. 어떻게 할아버지 모시기로 마음먹은 거야?"

"나도 처음에는 싫었지, 아무리 네 아빠랑 나는 알아본다고 해도, 치매에 암까지 걸린 양반을 모시는 게 어떻게 쉽겠냐"

"근데 왜 모신다고 한 거야?"

"네 아빠가... 밤마다 울면서 애원하는데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더라"


  할아버지를 모시기로 한 아버지와 엄마는 지방에 한 요양원에서 할아버지를 뵙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다음 주에 모시러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라 당부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와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지낼 방을 만들고 그 안에 살림살이를 집어넣으며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행복하다 말은 않아도 내일 아침 소풍 가는 아이같이 들떠있었다.


  할아버지를 모셔오기 이틀 전 날, 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자식을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일까, 평생에 비하면 짧디 짧은 이틀을 기다리지 못하셨다. 너무 오래 지쳐있었나 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많이 울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것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잃은 내 아버지가 불쌍해서 많이 울었다. 평생소원이 함께 사는 것이었는데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 할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것은 내가 싫어하던 내 이름. 이 이름으로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면서도 '이름 바꿀까' 아직도 이런다.


  며칠 뒤면 할아버지 제사다. 아직도 아빠 이름을 들으면 환하게 웃던 할아버지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곧 만나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이름 #부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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