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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Dec 03. 2016

'사랑'의 조건

<우연히 마주친 행복한 부부>

  오늘 오전에 현장 수업 때문에 건설현장에 갔다가 일정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려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구둣방이 보였다. 며칠 째 구두 굽을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면서 시간에 쫓겨 못 갈았는데, 오후 회의 시간까지 여유 있으니 굽이나 갈고 들어가자 하는 생각에 그 구둣방으로 들어갔다.

  주인아저씨는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참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꺼내 놓은 도시락을 도로 집어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와 구두 얘기를 하며, 내 구두에 덧댈 깔창을 찾는 아저씨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맞는 게 없는지 결국 큰 판을 꺼내 치수를 재는 아저씨를 보고 있는데, 그제야 아저씨 왼손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저씨는 왼쪽 손가락이 없었다. 한 개도. 그 순간 너무 당황했다. 당황한 척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계속 아저씨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양손에 목발을 짚고 들어온다. 아주머니는 왼쪽 다리가 접혀서 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연신 웃으며 추워서 죽는지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덩달아 맞장구치며 웃었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와이프였다. 들어오자마자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점심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일은 고되지 않은지, 자신이 도와줄 건 없는지... 간단한 대화를 나눈 두 분.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 돈을 받아 구두 굽 재료를 사러 다시 나갔다. 남편의 심부름을 가면서 시원하게 웃으며 나에게 농담을 던지고 가셨다. 아주머니가 가고 나서 아저씨께 넌지시 말했다.


"두 분, 사이가 참 좋으세요"
"그래요? 좋아 보여요?"
"네, 보기 좋으세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가 이 두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도움을 고맙게 받는 마음. 서로를 사랑하는데 마음 말고 다른 조건이 또 필요할까 이런 생각을 했다. 날은 추워도 두 분의 마음은 군고구마 해 먹어도 될 만큼 뜨거운 것 같았다. 보고 있자니 적잖이 부러웠다. 늘 행복하시길


덕분에 내 구두도 새 굽 달고 깨끗해졌다.


#구둣방 #부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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