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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 일상 Nov 22. 2021

계절 한입-가을

기다림의 계절

최근에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회사를 다닐 때 출퇴근을 할 때마다 차라리 버스에 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퇴사를 했는데...."

"퇴사를 해도 계속 버스에 치이고 싶지?"

"응."


퇴사를 한 지 한 달 반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내가 만약 오늘 죽으면 삶에 대해 후회를 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우울한 계절이다.


작년 겨울에 작업했던 책 중 하나에는 '나는 나의 우울을 계절 탓으로 돌리곤 했다'는 작가가 등장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작가는 가을과 겨울이 되면 다들 조금씩 우울한 감정을 느끼기에 자신의 우울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봄과 여름, 다른 사람들이 한없이 따뜻한 날들을 만끽하는 계절에는 자기 자신이 더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 끝없이 무너지는 우울은 여름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기분이 언젠가는 나아질 것을 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기다린다.




리틀 포레스트

가을이면 먹게 되는 햇밤을 설탕에 졸여 그해 첫눈이 내리는 날 꺼내 먹으면 된다고 들었다. 밤조림 또는 보늬밤은 기다림의 음식이다.  

밤을 뜨거운 물에 넣어 적게는 3시간, 많게는 12시간 불린 후 겉껍질을 까야하고, 껍질을 제거한 밤은 다시 베이킹소다를 넣은 물에 6시간에서 12시간 정도 넣어두어야 한다. 밤을 끓이고, 또 끓이고 몇 번을 반복하다가 설탕과 간장 약간의 술(나의 경우는 위스키)을 넣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끓여주면 된다. 그렇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맛있는 보늬밤을 먹으려면 가을에 만들어 겨울이 될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요리 같지만, 그 사이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마 누군가 평생 만들 음식 중 가장 긴 시간이 필요한 음식일지도 모른다. 한 계절이 지나야 완성되는 음식이기도 하니까.




리틀 포레스트

가을은 기다림의 계절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는 자주 여름이 좋은지, 겨울이 좋은지를 물어보지만 그 외의 계절에 대해서는 잘 물어보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추운 겨울이 그립고 추운 겨울에는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이 기대된다. 항상 그 그리움과 기대는 실망감을 안겨주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은 설레기도 한다. 

첫눈은 이미 내렸지만, 나는 여름이 끝나고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해졌을 때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기다린다. 그때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죽으면 어떨까'가 아닌 '오늘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될까. 한... 크리스마스 때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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