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세상이 멈춰 서던 그때, 나 역시 무급 휴가라는 이름의 멈춤 앞에 서 있었다.
내일 당장 일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막막함.
그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20년 지기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불러내 밥을 사주었다.
“맛있는 집 알아뒀어.”
만날 때마다 새로운 식당으로 데려가 주었고,
따끈한 국물과 고슬고슬한 밥 한 그릇은 그 자체로 위로였다.
숟가락을 뜰 때마다 마음속으로 같은 말이 들려왔다.
“밥 먹고 힘내자.”
두바이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이름마저 빛나는 친구도 나를 집으로 불렀다.
“밥 먹으러 와, 맛있는 거 해줄게.”
현관문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된장국 냄새가 집 안 가득 번졌다.
그날 내가 마주한 밥상은 설명이 필요 없는 ‘집의 향기’였다.
힘든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면 종종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밥상 앞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나는 그야말로 ‘밥상 치료’를 받았다.
결혼 전, 나보다 늘 지혜로운 친한 동생은 “언니, 결혼 전에 밥 한 끼 꼭 대접하고 싶었어요.”라며
정성껏 한 상을 대접해 주었다.
최근 함께한 주말에도 그녀는 손질부터 마지막 상차림까지 온 마음을 담아 준비했다.
반짝이는 식기 위에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 손끝에서 묻어나는 정성은 그 자체로 선물 같았다.
시부모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부모님은 연잎밥과 나물들을 하나하나 준비하시고,
메뉴판까지 영어로 만들어 보여드리며 대접했다.
그건 단순히 한국 음식을 알리려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 딸을 잘 부탁합니다.”
그 한 끼에 부모님의 사랑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늘 ‘밥’이 있었다.
밥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친구의 밥상은 기운을 북돋워 주었고,
동생의 밥상은 정성을 알려주었으며,
부모님의 밥상은 사랑 그 자체였다.
숟가락이 오가는 동안 목구멍에 걸려 있던 걱정이 조금씩 풀렸고,
김이 피어오르는 한 그릇의 따뜻함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한국 사람에게 밥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밥을 권하는 건 곧 “내 마음을 받아달라” 는 말이었다.
나는 그 밥에서 힘을 얻었고, 위로를 받았으며,
다시 걸어갈 용기를 얻었다.
밥심이란 결국 사랑이었고, 정이었다.
내가 귀한 인연들에게 받은 밥심을 기억하며,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끈한 된장국 한 그릇과 하얀 밥 한 공기를 내어주고 싶다.
그 한 끼가,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 곁에도,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는 따뜻한 밥심이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