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악수, 그리고 티 한잔.
우리 회사는 UN(국제연합) 다음으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국적과 문화의 동료들을 접하게 된다. 서로의 언어, 생활 방식, 가치관이 다르기에, 그 누구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다.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물론 서비스와 안전 수칙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선 응대 방식이나 컴플레인 해결법조차 각자의 '문화적 색채'가 스며든다.
그 다름이, 때로는 놀라운 방식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한다.
어느 날, 한 비즈니스 승객이 탑승 순간부터
분노에 차 있었다.
온라인 체크인으로 선택한 좌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된 불만은, 급기야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황당한 이유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날 비행기는 B777, 두 명의 부사무장이
함께 탑승해 있었다.
비즈니스 캐빈은 태국 부사무장, 이코노미 캐빈은
이집트 부사무장이 각각 맡고 있었다.
이들은 각 구역을 통솔하며 팀의 리더 역할을 한다.
상황을 파악한 태국 부사무장이 먼저
승객에게 다가갔다.
왜 화가 났는지,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을지 차분하게 물었다. 그녀는 프로페셔널했고
서비스 매뉴얼에 따른 정확한 접근이었다.
그러나 승객의 화는 더 거세질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집트 부사무장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나의 형제여, 무슨 일인지 나에게 말해보시오"
“Yes, my brother. Tell me what happened.”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는 악수로 인사를 건넸고,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속으로 '이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거 아냐....' 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승객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둘은 몇 마디를 나누더니 친구처럼 대화를 이어갔고,
곧 이집트 부사무장은 갤리로 가
설탕을 듬뿍 넣은 티를 만들어왔다.
승객은 점차 차분해졌고, 잠시 후에는
태국 부사무장에게 아까의 태도를 사과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놀란 얼굴로 " 대체 무슨 마법 쓰셨어요?" 하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문화에서는 잘 만든 차 한잔이 모든 것을 해결해"
"In our culture, Good tea solves everything."
그 방식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그날은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매뉴얼과 프로페셔널리즘이 닿지
못한 자리에 그의 문화적 직감과
인간적인 태도가 닿았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날, 감기로 고생하던 한 승객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인도 사무장이 조용히 다가와
티백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생강가루와
강황이 들어있었다.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독감 시즌마다 제가 꼭 챙겨 다니는 거예요. 어머니가 감기 걸릴 때마다
꼭 끓여주시던 차예요."
그날 그 승객은 "감기약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 승객을 감동시킨 것은 정해진 서비스 가이드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작은 제스쳐 그리고 사무장이 건 낸
그 티 안에는 누군가의 기억, 문화, 가족,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매 순간, 다양한 시선과
문화를 경험한다.
누군가에겐 습관 같은 일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마음을 열게 하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한 발자국 더 큰 세상으로
걸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