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니폼을 입으면 변신완료!

승무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마법소녀

by 구름 위 기록자

혹시 세일러문을 본 적이 있는가? 승무원도 비슷한 일을 한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변신 전에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늦잠을 좋아하고, 매주 넷플릭스 새 에피소드를 기다리고,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 그런데 듀티(Duty)가 시작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거울 앞에 선다.
반듯하게 유니폼을 입고, 스카프를 고쳐 매고, 구두를 가지런히 신는다.
마지막으로 우리 항공사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색 모자를 얹는 순간 - 변신 완료!


평범했던 나는 이제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된다.

어릴 적 TV 앞에서 열광하며 보던 마법소녀처럼.
다른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시간에, 혹은 깊은 밤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렇게 변신하고,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역할’을 해내러 출근한다.


그저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오가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간호사가 된다 ㅡ기내 응급상황에 가장 먼저 대처하고, 승객의 건강을 살핀다.

나는 안전요원이 된다 —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기내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진다.
때로는 경찰처럼 질서를 유지하고, 밀반입이나 인신매매(trafficking)를 감지하는 감시자의 역할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버틀러처럼, 가장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수많은 역할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유니폼과 함께 변신한 순간, 나는 단순히 옷을 입은 것이 아니다.

그건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의 무게를 품은 증표다.


어느 비행에서, 캐빈을 종종 뛰어다니는 꼬마 승객이 있었다.

엄마는 “그러다 다쳐! 기내에서는 뛰면 안 돼!”라고 타일렀지만, 꼬마는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주변 승객들의 만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살짝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말했다.

“다른 손님들도, 그리고 너도 다칠 수 있어. 우리 기내에서는 장난치지 말자. 천천히 걸어야 해.”

그러자 꼬마는 작은 손으로 경례를 하며 말했다.
“네! 승무원 말을 들어야 해요!”

그리고는 정말 천천히 살금살금 걷기 시작했다.
지금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장면이다.

그 순간 다시금 느꼈다.
유니폼은 옷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엄마의 말도, 주변 사람들의 말도 듣지 않던 꼬마가
내 유니폼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근히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물론, 유니폼을 입었다는 이유로
모든 화를 쏟아내는 ‘빌런 승객’을 만나는 날도 있다.

하지만 마법소녀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리 없다.


우리는 그렇게, 비행이 끝날 때까지

세상의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내의
작은 평화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변신’을 유지한다.


비행이 끝난 후 유니폼을 벗는 순간
나는 다시 평범한 내가 된다.

하지만 그 옷깃에 남은 작은 책임감과 뿌듯함은
늘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남는다.

오늘도 나는 그 작은 마법 변신을 다시 준비한다.


변신 완료 - Cabin Crew, Ready for takeoff.

keyword
이전 04화비행기 안에 세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