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다, 그 단어가 내게 남긴 것

by 구름 위 기록자

새벽, 머리맡에서 울린 카톡 알림음이 나를 깨웠다.


잠은 깊지 않았지만
그 문장은 그날 밤을 지나
조용히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친한 친구의 이름.
다른 메시지였다면 아침으로 미뤘겠지만,
그녀의 문자는 늘 반가웠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우리의 습관처럼,
맥락 없는 인사로 시작된 말.
그럼에도 그 문장에는 나를 떠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한 맥락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문장이
나를 바르게 앉게 했다.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정갈한 사람이야.”


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정갈.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말.

한 끼의 정갈한 정식처럼
담백하지만 오래 남는 기분.


그 단어는
오랫동안 내가 지향해 온 삶의 방향이였다.


내가 생각하는 정갈함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상태다.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용기.
그래서 정갈함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친구는 덧붙였다.

“직업 때문이 아니라, 넌 어릴 때부터 그랬어.”

나와 어언 스무 해를 함께한 사람이 건넨 말이라
더 마음 속에 깊이 와닿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고요한 확인 같았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희고 정돈된 방에
옅은 나무 향을 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며
자신의 세상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
적당히 무거워 흔들리지 않고,
또 적당히 가벼워 날아오를 줄 아는 사람.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내가 지향하는 미래를 미리 들여다본 것처럼 뚜렸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


나도 화려해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야간 비행 아래로 번져가던 야경처럼,
매번 빛나는 두바이의 마천루처럼,
나 역시 더 밝고, 더 눈에 띄고 싶었다.


조금 더 빛나고 싶어서
이미 충분히 가진 것들을 자꾸만 의심하며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애써 빛나려 할수록

내가 가진 색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오히려내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는 순간은 이런 때였다.


좋아하는 시간들을 글로 남기고,
은은한 향이 공간에 머무르고,
화려하진 않지만 나만의 색으로
조용히 하루를 채워갈 때.

그때서야
‘나’라는 사람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 새벽에 받은 그녀의 문자는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가장 밝게 빛났다.


내가 닮고 싶은 정갈함,
내가 추구하는 정갈함.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오래도록.


혹시 오늘, 당신의 하루에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당신만의 작은 정갈함 하나가 있다면

그걸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당신을 자신만의 길로 데려갈 방향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추구하는 이 방향성 또한

내 안에서,

나를 이끌어주는 힘으로

오래 남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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