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시간들
겨울이 오던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겨울만 오면,
아빠 손의 온도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도착한 비행.
모처럼 아빠와 단둘이 보내는 하루였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사소한 이야기로 티격거리다 웃고,
조금은 서툰 농담으로 서로를 놀리며 거리를 좁혔다.
6개월, 혹은 1년에 한 번쯤 만나는 사이라
조금은 멀었던 그 거리는 자연스럽게 또 가까워졌다.
겨울 초입의 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걸 느끼기도 전에 아빠가 말했다.
“춥지.”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빠 손이 그간 많이 거칠어졌다.
오래 일한 손, 오래 버틴 시간의 결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그 까칠한 손에서 전해진 온기는
내 마음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마치 국화빵과 호떡에서 올라오는 김처럼,
천천히, 온기를 가득 품은 채.
그 날 하루의 우선권은 전부 내 것이었다.
어디서 밥을 먹을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언제 돌아가고 싶은지.
비행 뒤에 피곤할까 봐,
가까운 곳으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 것도,
조금 수다 떨다 쉬어야 한다고 말해준 것도
모두 나를 기준으로 한 선택들이었다.
그 날, 크리스마스를 앞둔 마켓이 열려 있었다.
노란 조명 아래 반짝이는 장식들과
따뜻한 공기 속에 섞인 설탕 냄새.
나는 연신 “와…”를 내뱉었다.
아마 그때 아빠는 마켓보다 나를 더 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이 모든 풍경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아빠는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고 설명해주었다.
그 고마움이 쑥스러워
나는 불빛보다 조금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필요한 거 없어요?"
그러자 아빠는 늘 그렇듯 말했다.
“없어. 너 필요한 거나 보자.”
대화는 또 한 바퀴를 돌고,
서로의 배려만 남긴 채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켓에는 유난히 내 눈을 붙잡는 것들이 많았다.
호떡, 붕어빵, 국화빵.
타지에서 오래 살다 보니 그 평범한 겨울 간식들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무심코 말했다.
“와… 맛있겠다.”
아빠는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그리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지나쳤다.
조금 더 걷다가
스티커 사진 부스를 발견했다.
아빠랑 찍어볼까.
말을 꺼내는 게 괜히 쑥스러워
잠깐 망설였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언젠가는
같이 찍고 싶어도 못 찍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걸.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아빠 손을 다시 꼭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계속 우왕좌왕했다.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포즈를 생각할 틈도 없이
버튼 소리에 맞춰 얼떨결에 웃었다.
사진은 솔직히 말해 엉망이었다.
시선은 갈 곳을 잃었고,
표정은 어색했고,
구도는 엉성했다.
하지만 그 날 사진에 찍힌
아빠의 웃음은
유난히 크고 밝았다.
언젠가 아주 오래 지나
사무치게 그리워질 순간을
우리는 그 작은 네 칸 안에
그대로 담아두었다.
카페에 앉아 사진을 다시 보며 한참을 웃었다.
아마 아빠도 그 시간이 좋았던 모양이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다시 비행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밤 비행, 두바이행.
또 다시 잠시 이별.
몰을 나서려던 순간,
아빠가 한 가판대로 향했다.
“아빠, 필요한 거 있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빠는 종이봉투 하나를 꼭 안고 돌아왔다.
“따뜻하게 보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점원을 향한 말과 함께.
봉투 안을 열어보는 순간,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몇 시간 전,
내가 무심코 “맛있겠다”라고 말했던 것들.
국화빵, 호떡, 붕어빵.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아빠는 내가 던진 그 찰나의 말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투박한 종이봉투 안에는
겨울 간식보다 더 따뜻한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그건
사랑이었다.
정말,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