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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Nov 15. 2018

한여름 밤의 꿈

너와 마지막으로 보낸 여름이 끝나고. 



2018.08.28 


어찌 저찌 무더웠던 한달이 지나갔다. 어느덧 다시 아일랜드에, 익숙한 식탁 앞에 앉아있다. 꿈을 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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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국에 도착할 무렵 쭈쭈가 입원을 했다.(16살, 심장병 3년차) 혈압도 낮고 체온도 낮아 입원을 하지 않으면 어찌될지 모른다 했다. 내가 도착해서 며칠 후 퇴원을 시켰다. 응급으로 맞은 약 때문에 심장이 더 안좋아졌을 것이라고, 퇴원하면 아마 금방 갈 것이라했다. 집에 와서 심장약을 먹이면 자꾸 토를 했다. 그리곤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뭐만 먹으면 계속 토를 했다. 그래서 약도 밥도 먹지 못했고 쭈쭈는 일주일을 꼬박 굶었다. 중간 중간 심장 발작이 왔다. 종일 자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굳이 갈비뼈가 드러난 몸을 이끌고 방석 밖으로 겨우 나와 비틀대며 걸었다. 치매가 와서 쉬질 않고 집을 빙글 빙글 돌며 걸었다. 너무 오래 걸으면 멈춰줘야 했고, 오줌을 밟고 다녀서 오줌을 싸면 바로 치워줘야 했다. 언제 발작이 오고 언제 혼자 괴롭게 갈까 무서워 새벽 당번을 서가며 동생과 쭈를 24시간 돌봤다. 잠시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도 쭈가 발작을 일으키거나 숨을 잘 못쉬어서 1시간도 안되어 다시 소환되었다. 어떻게든 가는 곁을 지키고 싶었다. 뭐라도 좀 먹을까 싶어, 온갖 고기를 번갈아가며 죽을 쒀보고 볶아도 보고 삶아도 보며 음식을 했지만 잘 먹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신장약과, 애견용 포카리, 유산균, 영양제를 섞어 조금씩 주사기에 넣어 먹였고 그 약간의 당 성분으로 일주일을 넘게 버티는 듯 했다. 가끔 똥을 싸는 날이면 쭈는 거의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고 똥을 싸다 실신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개들이 죽기 전에 누워서 똥을 싼다해서 나는 누워서 똥싸는 쭈를 부여잡고 운 날도 있었다. 그렇지만 쭈는 계속 다시 살아났다. 그러던 어느날 쭈가 갑자기 우리가 사온 순대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닌가. 눈도 귀도 어두워져 더이상 누구도 알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냄새도 안맡던 놈이 평소에 좋아하던 간 냄새에 눈을 맹하니 뜨고 킁킁댄다. 그리하여 다음날 쌀은(동생) 호기롭게 정육점에 주문하여 간과 허파를 한 근이나 사왔다. 그게 최소 단위였단다. 허파의 어마무지한 크기와 두려운 비주얼에 우리는 조금 트라우마를 입었다.; 곰탕 끓이는 제일 큰 들통에도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컸기에 우리는 고민하다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허파를 잘라서 버리기로 했다. 그러곤 나중에 엄마한테 무지 혼났다. 어쨌든 용감한 동생은 그 물컹거린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엄청나게 기이한 벌건 허파를 소금에 박박 씻고 잘라내고 다듬어 삶았다. 신기하게도 다 삶으니 허파의 몸집은 금새 절반 이하로 줄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우리 좋아한다고 허파와 간 전을 자주 해주셨는데, 그때마다 이 엄청난 일을 혼자 하셨다는 생각에 괜시리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할머니 생각을 하며 전을 열심히 부쳐 냉동고에 넣었다. 그런데 반전으로 쭈쭈는 허파도 간도 전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돼지간만을 원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음식을 열심히 만들었는데 쭈가 먹지 않는 것이 반복되니 심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나 없는 1년 간 동생은 계속 이랬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 상상이 가며 울컥했다. 그렇게 간 사건이 지나고 며칠 후 쭈쭈가 너무 어이없게도 맛이 없다고 소문난 신장용 사료를 우각우각 씹어 먹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돼지도 소도 닭도 간도 안먹던 쭈쭈가 사료를 먹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그 이후로 쭈쭈는 매일 사료를 먹기 시작했고, 심지어 드러난 갈비뼈가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약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엄청난 혼돈 속에서 하루에 백번씩 고민했지만 더 이상 심장약을 주지 않기로 가족들끼리 합의했고, 쭈는 간간히 심장발작을 했다. 엄청 불안한 며칠을 보내고, 조금 안정적인 며칠을 보내는 주기가 반복됐다. 한편으로 내가 가면 동생 혼자 이 모든 것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나게 걱정되고 불안했다. 녹내장 때문에 하루에 5번씩 안약을 넣어줘야 하고, 오줌도 바로 치워줘야 하고, 발작이 오면 어찌할 줄 모르게 옆에서 지켜봐주기를 하루에도 여러 번. 눈도 점점 망가져가고, 몸에 물혹이 생기고, 자꾸만 발작이 오는 이 아이가 더 너무 고통스럽기 전에, 내가 있을 때, 편안히 떠났으면 하고 바랐다. 밥을 계속 먹고 살이 찐다 한들, 회복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태, 심장이 많이 상해 괴로운 것이 분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멀쩡히 살아있는 아이 옆에서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 죄스러웠다. 혼란스러운 인간들의 마음과 상관없이 쭈는 늘 고요하고 평온했다.  끝내 쭈쭈는 내 바람대로 떠나지 않았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쭈는 여전히 저너머 한국 땅 우리집 거실에서 잠을 자고 있다. 여전히 아가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곤하게 자는 쭈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죽음을 예측했던 모든 것들 속에서도 꿋꿋히 다시 오늘 하루 삶으로 딛고 일어나는 생명의 운명을 보며, 삶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것임을 몸으로 다시 체감했다. 삶과 죽음은, 예상하거나 뜻대로 준비할 수 없는 것이란다 얘야, 괴롭더라도 그저 씩씩하게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생을 살아내는 것일 뿐. 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란다. 그러니 그저 지금 너와 내가 만나 있고, 이 시간에 사랑할 뿐이란다. 비틀대면서도 여전히 방석 밖으로 발을 딛여 씩씩하게 걷고야 마는 쭈쭈가 내게 던지는 지혜였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이별을 했다. 나는 잠자는 쭈쭈의 귀에 속삭이고 떠나왔다. 사랑한다고, 가장 어두운 곳을 걷고 있던 나를 늘 살려줘서, 나에게 언제나 생을 주어서 고맙다고. 언제든 너가 원할 때 아프지 않게 편히 가라고, 우리 또 씩씩하게 살다가,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평소엔 만지지도 못하게 했던 쭈의 발바닥을 실컷 매만졌다. 나이가 들 수록 나에게 내주는 것만 많아지는 그녀이다. 씩씩한 너, 빛나는 너처럼 살겠다. 너가 나에게 말해준 것처럼. 언제나 지켜봐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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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상하지 못하게 이어진 시아버님의 척추 수술은 잘 끝났고, 오빠와 나의 건강검진 퍼레이드도 잘 끝났다. 해가 갈 수록 물혹의 갯수가 늘어나 나는 전신에 골고루 5개의 혹을 달았다 하고, 오빠는 고혈압과 중성지방의 위협으로 레드 카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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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픈 친구들을 제대로 보고 오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잠시 내려가 계신 구례에서도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효도는 커녕 엄마 아빠가 뭐든 해주시느라 고생만 시켜드리고 왔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리산 자락 아래 모든 것이 깜깜해진 밤, 구례 집 베란다에 엄마와 의자를 내어놓고 한참을 앉아있던 그 밤이 왜인지 모르게 선명하다. 귀뚜라미 소리와, 매미 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시끄러웠던 그 한 여름밤의 꿈같은 장면이. 지난 한달의 배경처럼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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