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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Nov 15. 2018

하루를 잘 보냈기를.  

우리 모두를 잘 부탁해-  


2018.09.01 


어제 쭈의 소식을 듣기 전 걸었던 바다. 

어제 쭈가 드디어 무지개 다리를 건너 고통 없는 곳으로 갔다. 실감이 나지 않지만 문득 문득 그 세상 귀여운 생명체를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억하고 아프다.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구석 구석 쭈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 집은 얼마나 휑할까, 가족들의 마음을 떠올리면 또 맘이 욱씬욱씬 한다. 이번 한국에 가자마자 떠나갈 것 같았던 그녀는 내가 있는 내내 잘 버텨주었다. 그녀가 인사할 시간을 잔뜩 벌어 주어서, 다행히도 우리는 인사를 오래 나눴다.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오기전 이주 정도는 쭈가 열심히 사료를 먹었다. 마치 우리 더이상 걱정시키지 않고 물도 밥도 잘 먹고 가겠다는 것 마냥.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도 물도 마시고 밥도 잘 먹었다. 내가 가고 동생과 1주일을 더 보내고 떠났다. 마지막 두 시간, 폐수종이 와서 숨 쉬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동생이 그 곁을 지켰다. 둘 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나 있을때 가라니까는, 말을 안듣고 그녀는 굳이 동생과 둘이 그 시간을 겪었다.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녀는 리쳐드 말마따나, 잠시 옆방으로 넘어갔다. 리쳐드는 우리는 우주라는 큰 집에 다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죽음은 무서운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 그냥 옆방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 한방에 오래 머물면 재미없으니, 때가 되면 방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또 어느 방에선가 만나는 거겠지. 불안도 잠시 걷어두고, 슬픔과 한동안 머무를 차례다. 그녀와 보낸 한 달 덕분에, 슬픔이 맑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맑은 기분이다. 슬프지만. 더이상 아프지 않을 그녀를 생각하며 한편으론 기쁘다. 이 생에서 다시 볼 수는 없겠지만, 이젠 늘 그녀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한켠으로는 든든하다. 또 사무치게 보고싶어서 자꾸 쭈쭈야- 하고 불러본다. 쭈쭈야- 보고싶다. 아프지 말고 즐겁게 지내고 있어. 잘 부탁한다. 우리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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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부터 미드를 다시 시작했다.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는 coping 기제라고 불러본다. 한 달째 그레이아나토미를 또; 정주행 중이다. 내가 병원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두리번 거리며 작별과 고통을 다루는 것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기 위해서이거나 그것을 잘 겪어내는 누군가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은건지도. 어쨌든, 위로가 된다. 이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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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아프거나 걱정이 될 때, 나무들을 보는 것이 요새 뭔가 힘이 많이 된다. 자꾸 나가서 나무들을 이리저리 찾으며 걷는다. 난 어렸을 때부터 나무한테 인사를 잘 했다고 한다. 청소년과 청년기에 들어가며 한동안 인사 안하고 버르장머리없이 지내다가, 아일랜드에 와서 언젠가부터 다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차분한 색깔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뭔가 말을 해주는 것 같다. 영어권 애들이니까 영어로 말을 한다. 주로 "Don't you worry" 라고 하는 것 같다. 너 따위 미물의 걱정은 소용도 없거던- 하는 것 처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고 있는 거라면, 걱정말란다. 다 생각이 있다고, 다 잘 지키고 있으니 넌 걱정 근처에도 가지 말아라 좀. 이라고 한다. 믿어 본다, 나 따위 미물이, 밑져야 본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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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 보슬비가 내렸다. 비온다고 산책을 거르면 거의 매일 걸러야 한다. 꿋꿋이 나가 장을 보고 왔다. Aldi, Dunnes, Joyce 중 요 며칠 조이스를 매일 갔더니 지겨워서 알디로 가기로 했다. 근처에 마트가 세 개나 있어 어딜 갈지 고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마트로 걸었다. 

알디에서 작은 공책 묶음 10개를 2.5유로에 팔아서 집어왔다. 알디에서는 주기적으로 별난 것들을 세일해서 판다. 오늘은 기타, 키보드, 우쿨렐레와, 온갖 여름용 튜브, 정원용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19유로짜리 우쿨렐레를 잠시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트렘폴린도. 아 어제 올리브가 집근처에 실내 트렘폴린 장이 있다는 어마어마한 뉴스를 전해주었다. 난 엄청나게 큰 퐁퐁이(트렘폴린)를 설치할 수 있는 정원을 가진 집에서 사는게 꿈이다. "어른도 가도 되는거야?" 라고 물었더니 "응. 근데 나 혼자 어른이였어." 라고 대답한다. 너무 신나면서도 웃겼다. 혼자 퐁퐁을 타러 갈 수 있는 너라니 정말 멋지구나. 월요일날 가기로 했는데, 가게 될런지 모르겠다. 퐁퐁 보단 풍풍 뛰면서 쭈쭈 있는 하늘에 머리를 좀더 들이밀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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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가 이렇게 간다. 쭈쭈야 너도 하루를 잘 보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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