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소담 Nov 15. 2018

모든 것의 삶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자신의 생명을 다하고. 



2018.09.03 



오늘은 오빠가 늦은 낮잠을 주무시며 산책을 쉬겠다고 하여 오랜만에 혼자 산책길에 나섰다. 하루 종일 집에 좀비처럼 있는 날도, 식물에 물 주듯 산책을 나온다. 몸도 바깥 공기, 식물의 기운, 멀리 보이는 바다 같은 것들이 물처럼 밥처럼 필요하다. 

혼자 걸을 때는 빠르게 바다를 볼 수 있는 오른쪽 길을 택한다. 한 블럭만 가면 저 뒷편에 바다가 보이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언덕을 오르기 전과 언덕을 내려올 때 잠깐 보이는 바다지만, 그것으로도 맘이 트인다. 영락없이 난 바다 근처에 살아야 할 팔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바다를 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있다. 바다를 보면 언제나, 막혀있던 무언가가 조금 트이는 기분이다.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내 몸에게 항복한다, 나는 어떤 것도 붙잡지 않겠다, 그리고 모든 것은 움직인다. 쉽지 않은 어떤 일련의 사건들이 찾아 올 때, 직장에서 누군가가 언성을 높이거나 싸움을 걸어올 때, 나는 숨을 멈춰왔다. 몸에 힘을 꽉주고 버텨왔다. 지금의 내 몸도 그때의 습관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 문제는 그래서 몸도 마음도 예민한 나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은 세상을 대하는 이 자세를, 나는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이다. 

무언가를 지날 때마다 같은 패턴을 지나쳐왔다. 1. 몸으로든 맘으로든 붙잡고(긴장하고), 2. 멈추고 , 3. 그 다음에 올 것에 대한 대처 준비를 한다. 대처 준비를 백날 해봤자 무엇이 올지 모른다, 백만가지를 준비할 수도 없겠지만, 혹여나 준비한대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올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에. 게다가 준비를 함으로써 나는 나에게 올 수 있는 좋은 것들까지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번 똑같은 방어자세로 뭐든 맞이하려는 준비가 더 나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마음에게 가르쳐 본다. 그냥 오는 것들을 놀랍게 맞이하고 조금은 새롭게 선택하고 한편으론 무심하게 지나가 봐야지. 모든 것들에는 각자의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엔 다 지나간다, 그것만이 유일한 의지책이자 위로이자 생명줄이기도 하다. 슬픔에도, 몸의 긴장에도, 심지어 죽음에도, 모든 것은 고유한 생의 시간을 지니고 있다. 슬픔은 막지 않는다면 지나가기 마련이고, 몸의 긴장은 더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그 힘을 뺄테다. 모든 죽은 것은 땅으로 돌아가 새싹을 돋게 한다. 아무리 붙들어 봤자, 숨을 참으며 견뎌봤자, 어려운 일도, 좌절감도, 더이상 방법이 없다는 생각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누군가와의 다툼도, 모든 것은 다 각자의 생이 다할 때까지 머무르고, 또 다른 생을 싹 틔우고 지나갈 뿐. 그러니 뭐든 별로 겁낼 필요가 없지 않나. 다 결국엔 지나갈 테니, 또 새 생명을 낳을테니. 오히려 기대해 볼 일이다. 나에게 온 무언가가 어떤 생명을 다하고, 또 어떤 생명을 낳을지를. 모든 생명을 경배하고 축복하며 가능한 힘껏 나를 열어두어보자 맘을 먹어 본다. 기분이 조금 낫다. 즐거운 일을 하며 먹고사는 방법을 찾으려면, 즐거운 일을 주구장창 해보는 수밖엔 없지 않냐고도 생각해 본다. 생각을 하면서도 뭔가 여전히 좀 어이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하다. 그래서 다음 주에는 여행을 가야겠다. 없는 돈을 생각해 보면 또 많이 어이가 없지만, 없는대로 다녀올 궁리를 해봐야지. 무모하게 비행기를 탈지, 차를 빌려 아일랜드를 돌아다닐지. 어디에 항복을 해볼까나.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 했으니 들어봐야지비.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를 잘 보냈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