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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어린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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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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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로 돌아온 개구리
Mar 14. 2021
선생님을 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지난 제자들이 찾아올 때 아닐까.
2014년 6월 발령으로 만난 2학년 첫 제자들, 녀석들과 만남은 특별했다.
아파트들이 우르르 들어서며 증설로 6학급은 9학급이 되었고 몇몇 아이들은 기존 선생님들의 품을 떠나 새로 반을 이루게 되었다.
“2학년!”
“1반”, “2반”, “3반”, “4반”, “5반”, “6반”
“2학년”하면 “9반”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다양한 숫자들이 돌아왔고
녀석들은 그만큼 기존 선생님들의 손길이 닿아있었다.
여섯 가지 색깔에 내 색깔을 묻히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교생실습이 아니라, 정말로 온전히 내 학급이 생겼다는 기쁨에 얼마나 설렜던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정말 열심히 가르쳤던 걸로 기억한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몰라도 퇴근 시간을 잘 지켰던 적이 없었다.
월급을 받으면 녀석들과 학교 앞 치킨 집에서 콜팝과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으며,
차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사제동행 데이트를 떠났었다.
정말이지, 그때만 가능했던 짓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들의 학급 번호와 이름, 얼굴, 가족 관계, 꿈, 고민들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애틋하다.
그런 녀석들이 어느새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찾아온다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녀석들이 온다는 시간부터 가슴은 두근두근, 괜히 변해버린 내 모습에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할까 싶어 거울을 보고 또 보곤 했다. 계단에서 조그만 소리만 나도 설렜다.
변성기의 목소리,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녀석들이 한 손에는 꽃다발과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보자마자 한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줬다.
그때와 다른 학교, 다른 교실이었지만 녀석들과 나는 똑같았다.
사람과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도, 그 사람과의 마지막 기억, 그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건 마치 지워지지 않은 얼룩 같다.
얼룩
사람을 사랑하는 건
참 위험한 일이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 사람의 색깔이 나에게 묻는다.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기에
고이접어
그렇게 넣어둔다.
마음을 나눈다는 건
그리움을 묻힌다는 것이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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