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비닐봉지

003. 검정비닐봉지

한 아이가 편의점에서 나와 검정비닐봉지를 앞뒤로 흔들며 걸어간다.


검정비닐봉지에 무엇이 들었기에 저렇게 즐거운 걸까? 주전부리가 아닌 설렘과 기쁨 같은 것들이 한아름 들어있지 않을까? 아이는 점차 멀어져가고 검정비닐봉지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기대하던 어린 내 모습이 가까이 와있다.

아빠의 퇴근 시간은 늘 달랐다.

터벅터벅, 단단한 안전화를 타고 전해지는 익숙한 발소리와
“아빠 왔다!”
초인종 소리보다 크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쪼르르 달려가는 아들 둘, 딸 하나.

술로 익은 빨간 코,

고된 일의 흔적을 고이 간직한 흙투성이 안전화,

담배냄새 찌든 작업복,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셋 중 하나는 꼭 붙잡고 까슬까슬한 수염으로 비볐다.
그렇게 아빠를 마중하고 나면 우리의 시선은 한 군데로 꽂혔다.

아빠 손에 한 가득 들려있던 검정비닐봉지.

때로는 순대,

때로는 치킨,

때로는 단단해서 먹기도 힘들었던 땅콩순대엿.

무엇이 들어있을지 몰라 더욱 더 기대되던 검정비닐봉지였다.


검정비닐봉지를 풀어헤치고 옹기종기 모여 먹는 야식의 맛이란...

그 시절 그렇게 우리는 아빠를 기다렸고, 검정비닐봉지를 기다렸다.

빨간 코 아빠는 우리에게 산타였다. 눈 대신 흙이 묻은 산타.

가끔 비닐봉지가 손에 들어오면 필요할 때 사용하려고 돌돌 말아서 보관해둔다.

쓰려고 모아둔 비닐봉지인데,

유독 검정비닐봉지만은 쓰고 싶지가 않다.

여전히 나는 검정비닐봉지가 필요한 아들이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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