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에서 배우는 공존

멀리 떨어져 있는 딸을 둔 엄마의 마음

by 순수

"레전드, 거실에서 담배 피우고 이대로 둠"

뉴욕에서 돌아온 딸이

두바이에서 보내온 사진과 짧은 메시지.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고요했던 주말 오후의 평화가 깨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이집트 룸메이트와 잘 지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사진 속 재떨이와 담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딸은 입사 후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도시는 낯설었지만 함께 지낼 룸메이트가

어떤 사람일까 기대가 컸다.


한 살 위의 이집트 동료.

처음에 만났을 때

상냥하고 잘 웃는 괜찮은 룸메인 것 같다고

딸은 안도했고 기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집트 룸메와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커졌다.


처음에는 청소 문제였다.

공유거실과 주방을

규칙을 정해 청소를 하기로 했으나


룸메이트는 항상 대충 청소.

주방에도 음식물 찌꺼기가 그대로 방치된다고

딸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서로 정한 규칙이니 지키자"라고

조용히 말해보라는 내 말에,

딸은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다"고 답했다.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트레이닝 기간 동안

많은 양의 공부를 소화해야 하고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 압박보다

룸메이트와의 생활이 더 힘들다고 했다.


어느 날은 결국 참다 못해

"제발 제대로 청소하자"라고 말했더니

"난 네 룸메이트지, 메이드가 아니야"라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단다.


딸은 억울함을 참지 못해

"나도 힘들어도 열심히 청소한다.

나는 노력하는데, 너는 왜 대충 하냐"고 맞섰고

둘 사이엔 불꽃 튀는 언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남편은 관리자에게 룸 체인지를 요청하라 했고

딸은 "여기가 좋은데 내가 왜 옮겨야 하냐"며

단호히 거부했다.

나는

"네가 편안하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

이집트와 한국의 문화 차이도 있어.

살아온 게 다르니까 너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조금만 더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잘 지내봐"


가끔은,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라"며

참는 법만 알려 주던

나 자신이 스스로도 답답했다.


이후 딸과 통화할 때면

"몰라.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비행 스케줄이 달라 함께 있는 시간도 거의 없으니까"

체념인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지혜인지

답답함과 단념이 섞여 있었다.


그러던 몇 개월 후,

딸은 영상통화 첫마디부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룸메가 장문의 편지를 내 방앞에 두고 갔어."


네가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을 봤고

자신도 노력해 보겠다는 내용.

딸의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겠다는 말.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비뚤비뚤 한국어로 적힌 "정말 감사합니다 "였다고.



그러나 오늘.

뉴욕 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을 반기는 건

지저분한 거실과 재떨이와 담배들.


이번엔 내가 참을 수 없었다.

즉시 관리자에게 사진과 함께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라고 했더니 경비 직원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딸은

회사 내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무슬림 문화권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대신

담배를 많이 피우기 때문에

관리자에게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을 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딸에게

간접흡연이 어떤 해를 주는지

이번만큼은 절대 넘겨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반드시 관리자에게 공식적으로 조치를 요청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내 말에

딸의 마지막 답변은 나를 당황케 했다.

아니면 내가 너무 극성스럽게 걱정한 티가 났나 싶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괜찮아.

옛날에 아빠도 베란다에서 몰래 담배 많이 피우셨잖아.

룸메가 자기 방에서만 담배 피우는데

내가 없으니까 거실에서 피우고

치우는 걸 잊은 것 같아.

그렇게까지 엄마가 걱정 안 해도 괜찮아"


나는

"어 그래 딸아..네가 잘하리라 믿어"라고 말했지만

이 상황에 옛날,

아빠가 몰래 피우던 담배 이야기까지.



생명과학을 전공한 딸이

외항사 승무원이 되겠다고 했을 때

속 마음은 그 길로 안 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속 마음과 달리

"그래. 해보고 싶으면 한번 해봐"라고

결코 가볍지 않게 말했고,


4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딸은 두바이로 떠났다.


벌써 일 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다양한 문화 속에 성장한 동료들 사이에서,

딸은 어쩌면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며 공존하는 법을 혼자 터득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멀리 떨어져 있어

손 닿을 수 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나는,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며


딸의 사소한 말 한마디,

영상 너머 미세한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딸이 선택해서 걸어간 길이니 믿고 응원하며,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자라온

각기 다른 이들과의 삶 속에서

지혜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스스로 잘 터득하길 기도한다.


하지만

믿음이 아주 강하지 않은 나는,

기도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딸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그 생각만이 맴돈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 있다"

<<모순>>에 나오는 이 대사처럼


지금,

내 마음과 기도는 모순속에서

빈곤과 풍요를 부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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