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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명찬 Dec 02. 2019

그릇

담지 못할 게 없네

         

한 번에 다 담지 못해

이 그릇 저 그릇에 나누어 담아놓았던 것.     


그게 미움이면

당신, 참 옹졸한 짓 하느라 애썼어요.

하나씩 꺼내 볼 때마다 아플 거예요, 오래오래.

몇 개, 놓쳐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간신히 울음을 참고 버티고 있던 아픈 마음을

와장창 깨뜨려 놓을지도 몰라요.     


그게 사랑이면

당신, 참 지혜로운 일을 하셨어요.

하나씩 꺼내 볼 때마다 좋을 거예요, 두고두고.

몇 개, 인심 써 나눠주기라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당신 마음도 흐뭇해져

다음에는 더 많이 내놓고 싶어질 거예요.     



사람을 그릇에 곧잘 빗대는 건 그릇만큼이나 뭘 마음에 잘 담아서일 거다. 담은 걸 꺼내기도 잘하고 오래 두기도 잘해서일 거다. 오래 둔 걸 김치 익히듯 잘 익혀서일 거다. 익은 걸로 의젓하게 잘 대접해서일 거다. 그래서 ‘대접’이라는 것은 정말 대접 잘 하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일 거다. 입구를 넓게 벌려 누구에게든 인심 쓰라는 뜻일 거다.     


속이 다 보이도록 투명한 그릇도 좋겠고, 속이 편하도록 단단하고 두툼한 그릇도 좋겠지만 당신이 매일 만지고 즐겨 쓰는 그릇이기를. 당신이 매일 씻겨주고 소중히 여기는 그릇이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걸 담아 내놓을 때 고민 없이, 가장 먼저 집는 그릇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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