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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명찬 Dec 04. 2019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상처,

어느 겨울날 갑자기 소포 한 꾸러미를 받았다.

여는 순간 폭탄이 터졌다.     


앓을 때,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계절 옷처럼 차곡차곡 개서 마음 깊이 넣어두고

탁탁, 손을 털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     


그 시간의 끝은 언제 찾아오는지 내내 궁금했었다.     


회복,

어느 봄날, 불현듯 찾아왔다.

가는 곳마다 꽃이 따라다니고 있는 걸 눈치 챈 날.

더 이상 춥지 않은 걸 새삼 느끼던 날.     


어른이 되었다.

아니, 어른이 되기로 했다.

마음에 저절로 그렇게 결심이 섰다.     


꼭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바람을 넣어 모아 두었던 풍선을

한꺼번에 띄워 보낸 것 같은, 그런 기분.      


*

그날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삶은.          



안 죽더라는 얘기지.

부딪힌 일도 있었지. 들이 받은 일도 있었고 들이 받힌 일도 있었지. 실려 가서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지. 그렇게 쉽게 죽는 게 아니라는 얘기지. 생명의 빛, 그렇게 쉽게 꺼지지 않더라는 얘기지.     


죽을 것만 같아서, 죽을 맛이어서 죽더란 얘기지.

이런 이유로 날 어떻게 할 녀석은 ‘나’밖에 없지. 이놈이 시시각각 숨통을 조이지. 이놈이 창밖으로 마음을 내던지지. 이놈이 툭, 시비를 걸고 생사람을 잡더란 얘기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란 얘기지.

우수에 찬 매력적인 얼굴이 클로즈 업 되고, 근사한 백그라운드 뮤직이 깔린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후에도 불이 켜지지도 않지. 그렇게 끝나면 그냥 끝이지. ‘어, 이게 아닌데?’ 깨달을 때에는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지.     


절대 죽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지.

풀 죽지 말고, 기죽지 말고, 억울해 죽지 말고, 숨죽이지 말고, 매일 죽어서 살려보자는 얘기지. 그래, 맞아. 좋아 죽고, 예뻐 죽고, 재미있어 죽자는 말이지. ‘죽고 못 산다’는 뜻, ‘서로 아주 사랑하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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