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명찬 Jan 18. 2020

모든 잎이 꽃잎이 된다

두번째 봄


모든 잎이 꽃잎이 되는 가을은 두번째 봄이다.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
- 알베르 카뮈


인생의 사계절. 첫봄에는 시작부터 설렘과 의욕이 있고 거침없이 사방으로 뻗는 성장이 있지요. 그 끝자락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여름을 봅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여름.


여름을 지나 두번째 봄에 와 보니 시작부터 감동과 감사가 있네요. 봄을 또 볼 수 있게 되다니요. 그러나 이 봄이 여름으로 가는 여정이 아님은 잘 압니다. 살짝 뒤집힌 순서의 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요.


두번째 봄이라! 얼핏 첫봄 때의 그 아이 마냥 덤벙거리며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합니다. 이번 봄은 허투루 보내선 안 되겠다, 싶은 거지요. 모자람을 찾아 채워가며 성숙해지고 싶어 하는 어른의 모습입니다. 가상하게 여겨주시고 좀 봐주세요.


이미 삶이 통째로 가을 한 복판임에도 여름을 고집하는 중년이 있다면 B급(그냥 으쌰으쌰~주제) 자기계발서를 잘못 찾아 읽고 오해한 사람입니다. 제대로 된 책이라면 단연코 근거도 없이 당치도 않은 착각이나 최면을 걸겠다고 덤비지 않으니까요.


거울 앞에 서면 저절로 확인됩니다. 심지어 다음 계절의 얼굴 생김새도 얼추 예측 가능합니다. 아무리봐도 가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두번째 봄도 봄은 봄입니다. 물론 첫봄의 아이마냥 살 수는 없습니다만, 계절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만끽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나간 계절 기웃거릴 일이 아니지요.


수확의 시기인 가을이니 무언가 단단하고 묵직한 열매를 많이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부터 일단 내려놓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당연시했고, 누가 그래야 맞답디까. 사람이 맺는 진짜 열매는 인생의 계절과는 상관없이 하는 일과 사는 일, 크고작은 일, 모든 기승전결에서 맺어지는 게 아닌가요? 인생의 계절을 지나며 사이사이 수확한 것을 토대로 다음 길을 열며 여기까지 열심히 왔는데요.


"보따리 검사라니요. 울컥 화가 치밀고 재미도 없게시리."


보따리를 열면 기본으로 평생 먹고 살고도 남을 큰돈, 매끈한 건물 여러 채, 근사한 사회적 지위 등 유형자산들이 튀어나올까요? 이름 들어본 적 있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이나 '눈에 좋은' 구경 시켜줄 거고, 나머지 대부분은 열어봐야 '마음에 좋은' 구경일텐데요. 대개 무형자산들이라 착한 사람들 눈에나 잘 보일 거구요.


괜히 한 마디 덧붙이자면, 게다가 겨울이 지나면 그 보따리조차도 내려놓고 빈 손으로 가는 거, 모르는 척하는 것도 들통날 계절이 바로 코앞이잖아요. 그래서 인생의 겨울에 들어선 어르신들과 이런 얘길 나누면 의미 있는 미소를 띄며 아이에게 하듯 따듯하게 격려해 주십니다. 왠지 '좋~을 때다. 너, 한번 찐하게 겪어보렴.' 하시는 듯합니다만.(, 그  뜻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첫 봄 레이스, 한 여름 레이스 중인 선수들을 바라볼 때의 마음도 크게 다를 바 없겠지요. 저 역시 내놓을 수 있는 건 아낌없는 격려 뿐일 겁니다. 구경한 것과 겪은 것의 차이만큼 큰 게 없어서요. 게다가 내가 겪었던 계절과 다른 선수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계절은 배경만 비슷하지, 스토리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중년일지라도 다릅니다. 스스로에게는 어제와 오늘의 가 다른데요.


*

이야기 주제가 '다름'과 '틀림'으로 담을 타고 넘어가기 전에, 얼른 두번째 봄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잎이 꽃잎이 되는 모든 순간들을 만끽하고 싶어요. 삶과 일, 쉼 속에서. 두번째 봄 레이스 선수들과 함께. 그리고 당신과 함께.




작가의 이전글 연애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