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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명찬 Nov 05. 2015

복어와 북어

어른을 위한 우화

   

복어漁의 뱃속에는 독이 들어 있다. 

그렇다고 복어는 함부로 독설을 뿜어대지 않는다. 못 견디겠다 싶으면 그저 배를 빵빵하게 부풀려 경고할 뿐이다. 그 의지를 받아들여 주기만 한다면 복어는 위험하지 않다. 복어를 먹잇감으로 본다 해도 그때까진 괜찮다. 다만 그것이 실행에 옮겨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복어 뱃속의 독은 테트로도톡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식자의 뱃속에서 맹렬하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복어福語의 뱃속에도 독이 들어 있다. 

귀가 들은 축복의 말들, 그 자체는 문제될 게 전혀 없다. 깊은 사랑과 따뜻한 격려와 배려가 느껴진다면, 덕담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고자 한다면 복어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메시지를 지금의 내 현실, 내 수준, 내 능력, 내 위치로 착각한다면 그때부터 복어 뱃속의 독은 ‘교만’이라는 이름으로 내 뱃속에서 테트로도톡신의 몇 천 배, 몇 만 배 맹렬하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남의 속을 잘 풀어주는 북어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까요?     


그리고, 북어

     

북어는 자신의 실제 이름을 모를지도 모른다. 

북어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북어, 명태, 황태, 생태, 동태, 코다리, 흑태, 백태, 깡태 등등 제각각이다. 삶 이후에 다채로운 모습과 이름으로 기억 되길 바란다면, 북어로부터 배울 일이다. 


난 북어를 본다. 

온몸의 살과 뼈가 가죽에 붙어 앙상하기만 한 북어. 눈 동그랗게 뜨고 동네북마냥 얻어터진 후에 한 그릇의 국이 된다. 그러면 삶의 시간과 죽음의 시간도 모두 끝난다. 숱한 입 속으로 흐물흐물 사라져 마침내 속을 확 풀어주고는 꽃이 지듯 북어는 황홀하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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