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갈아 넣었다
유튜브에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전업 주부 논란에 대한
쇼츠가 떴다.
와이프가 애도 없는 전업 주부인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분리수거 하기 등등의
가사 노동을 남편에게 전가해서 불만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그게 부당 하다는게 남편의 주장 이었다.
'애가 없는 전업 주부'는 모든 집안일을 응당 다 해야하는 걸까
서로 도와줄수 있는 부분은 도와줄수 있는거 아닐까.
이게 그렇게 부당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싶은 내가 페미인가?
집안일을 아예 내팽겨 쳤다면
직무유기로 비난 하는게 맞다 보지만서도.
예전에 블로그에서 한창 글을 쓸 때
나는 연년생 육아로 한참 이었다.
첫째 어린데 둘째가 태어났지,
모든 것이 너무 힘든데 주위에서 남편 아침 못챙겨 먹는걸 걱정하길래
갇 출산해서 모유 수유하는 나 조차도 밥을 챙겨 먹기 힘든데
남편 아침 까지 챙겨야 하나?
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성인으로서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게 없었고
극한 표현으로 화장실 조차도 내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고난의 시절이었는데
내가 성인인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지 못한게 그렇게 부당한거냐고
글을 남겼었다.
그때 댓글이 참 대단했는데
" 남편 밥 안 챙겨주는게 대단히 자랑스러운가 봐요?"
내가 세상 다양한 곳을 살아 본 것은 아니지만
나름 다양한 세상을 경험했는데
이렇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도 드물었다.
여성이 약자라는 말이 아니라
갇 출산해서 심신이 회복되지 않은 여성이 약자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좀 자라고 둘째가 돌이 지난 즈음은
서로에 대한 '배려'로 아침이든 뭐든 챙겨 줄 수도 있다고 본다만서도.
전업 주부 10년차로
인생을 갈아서 아이를 키웠다.
그 쇼츠에서는 여성이 본인이 떳떳한 직업을 가지지 않아서
결혼하면 다 내려놓고 회피 하고 싶어한다는데
글쎄.... 그런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겠다.
나는 결혼 전 은행에서 일했고
대기업 사원 쯤이라 볼 수 있겠다.
대졸 공채였구요.............
남편과 비슷한 스팩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내가 전업주부가 된 이유는
아이를 학원 돌려가며 키우지 않고
오롯이 키우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온전히 가정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 직업에 떳떳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하더라.
그게 운이 좋아서 조부모가 해줄 수 있다면
그런 옵션도 있겠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홀로 꼿꼿이 자라왔고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그건 나의 몫이었으므로.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 나가서 일하라는데
나라고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석사 논문도 썼고
학위도 끝냈고
도저히 육아는 처음이라 난감하여
방통대 유아교육학과도 다시 다녔다.
근데 이건 육아에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의 노력 이었다.
학교는 스케줄에 융통성이 있어 아이가 아픈것에 대한 조정이 나름 자유로웠지만
내가 풀타임 직업인 이었다면?
어찌 그렇게 때마다 수족구가 자주 유행인지
한 달을 멀다하고 애가 아팠고
우리 애들은 너무나도 유별나서 어린이집 적응 기간만 6개월이 걸리고
애들이 순한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걷는것도 17개월에 걸었으며
뭐든지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 었다.
직장을 잡아도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국내에서 제일 좋다는 직장 어린이집을 맡겨도
하루 종일 애가 울어 청소 하는 아주머니가
애기 엄마, 애기가 너무 불쌍하다고
하시는데 그때 그 펑펑 울었던 날들은 아직도 가슴에 사무친다.
돌봄 도우미나 가사도우미를 고용해도
돌봄 도우미분은 무단으로 결근 하시기도 해서
간담이 서늘 했던 날들도 많았고
원래 봐주시던 분이 아니면 아이는 또 패닉이 오고
그런 일상에 나도 더이상 뭘 할 수가 없더라.
그렇게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고 10년이 되었다.
아이 키우면서 한국에서도 늘 바빴던거 같은데
어떤 지인의 남편이
여자들 애 어린이집 보내고, 브런치고 먹고 자빠졌다고
그걸 또 그 지인분이 말하면서
본인은 그런 브런치나 먹고 자빠진 여자가 아니라, 공부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더라.
아니 브런치는 먹고 싶어서 먹냐고요......
엄마들이랑 친목하면서 애 플레이 데잇도 하고
그러면 애도 어린이집 생활 편해지고
일종의 회식과 같은 사회생활 아닌가?
그리고 일생을 누군가의 대기조로 살아가고 있는 심정을 아냐고요.
언제 아플지, 무슨일 생길지 몰라서 그 시간을 비워두는 건데요......
한창 손 많이가는 시간을 보내고
이제 일 하려고 하면 이미 내나이 마흔 중반인데
그러면 다시 시작하기에는 또 너무 늦게 되어버리고....
전업 주부는 인생을 뭐 어떻게 살아야 합니꽈????
나의 캐나다 육아 현실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외식이나 밀키트가 잘 되어있지만
캐나다는 너무 비싸다
특히 식당에서 먹으면 그 가격에 세금 15%, 팁 15% 까지 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집에서 음식 해대야 해,
학원 봉고차 따위 없어서 다 실어다 날라야 해,
심지어 애들끼리 놀때도 차로 데려다줘야 해,
학교 행사 많아서 발런티어도 해야 해,
공부 가르쳐 주는 학원 잘 없고
튜터를 일주일 내내 부를수도 없으니
집에서 엄마가 공부도 가르쳐야 해,
진짜 캐나다 와서 인생의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다.
내가 하도 공부 가르칠 때 혼내게 되니까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지금 내모습은 지성인의 면모로서 1도 없는 모습이고
스스로가 싫다, 이제 공부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
나도 화내는 엄마 그만 하련다.
했더니
제발 자신들의 공부를 계속 봐달라며,
엄마 만한 스승이 없다며.
짜식들....... 일타 강사의 맛을 보았으니 끊기 힘들지?
나는 처음 여기 와서 CAD 를 배워서 취업을 했었다.
평생 문과인데 것도 울면서 배워서 취업까지 해냈는데
출근 시간이 8시부터 4시까지 였다.
그럼 애들을 7시에 깨워 7시반에 학교 보내서 픽업을 5시에 해야 했다.
당시 캐나다에 온지 만 1년 정도 된 시기라
아이들 불어가 완벽하지 않는 시기여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애를 학대 했고
뭐 이런 저런 사건이 있어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애들을 맡아서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늘 브런치에 썼듯
애들은 내가 집에 들어 앉은 이후로 학교에서 항상 5등권 안이었고
학교에서 인정 받고
그래서 학교 표지모델도 하고,
행 사때 마다 무대에 서서 발표하는 친구 중 한명이 되었고
나 역시 학교 행사때 마다
프랑스어도 못하는 주제에 자원 봉사하여
미술관, 동물원 온갖 행사를 다 따라다니며 선생님을 보좌했고
그 결과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성적 모두 안정이 되었다.
매일 싸는 도시락은 또 어떠한가?
똥손이지만 노력해서 기냥 도시락 싸는건데
애들이 너네 엄마 판타스틱하다,
머핀 한번 구워서 가져가면 서로 달라고 난리이고.
김치며 김밥이며 예전에는 냄새때문에 주져했던 음식들도
애들이 서로 달라며 난리 란다.
그렇게 나는 애들 사이에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런말 부끄럽지만 애들이 나를 좋아해..... 후훗.......
밖에 나가서 돈 벌려고 노력 하지 않은게 아니라
나가서 돈 좀 벌려고 하면
애들이 안정이 되지 않고 힘들어 하고,
내가 온전히 내 인생 갈아서 애들 케어 하면
애들이 눈에 띄게 좋아지니까......
아직은 어리니까 이렇게 붙어 있는건데
나도 앞으로 모르겠다.
이렇게 사는게 맞는지.
자의로 전업 주부로 산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할 수 있겠다.
지금 전업주부에 대한 비판,
한국 사회에서 한국 남자에게만 주어지는 과중한 책임감에 대한
반작용이라고도 본다.
너무 사회가 남자들에게 가혹하고 많은걸 기대하는거 같기도 하다.
그냥 군대를 여자도 가면 안될까?
아님 군대세라도 내면 안될까
이제 그럴때가 된거 같은데 말이다.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 입장에서
둘다 모두 안타깝고
전업주부인데 집안꼴이 엉망인 인데 돈 버는 남편보고 하라는 사람들
없겠지만 있다면 그건 옳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일부 집안일 정도 도와주는 걸로 너무 야멸차게 하는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나 막 하키백 두개씩 매고 애들 경기장 다니면
캐나다 아빠들이 한국 엄마들 대단하다고
애들에 대한 희생정신에 쌍따봉 날리던데.....
그렇게 전업주부들이 비판 받을 만큼 한국 주부들이 이상한가?
여기 캐나다에서는 한국 엄마들 알아주는 편인데 말이다......
어머님들 자부심을 가지소서!!
다만, 할 의무는 다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