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
내가 감사일기에 대해 알게 된 건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힘든 결혼생활에서 나의 돌파구는 오로지 책.
초겨울에 태어난 갓난아이를 데리고 밖에 다니기도 힘들었고, 잠귀가 밝아 아이의 뒤척이는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길 반복하느라 항상 잠이 부족했던 나는 힘들다고 해서 뭔가를 하며 마음을 다스리기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일 손쉬운 방법인 책을 통해 현실에서 도망쳤다.
내가 심적으로 너무 힘들 땐 자기 계발이나 무거운 주제의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
안 그래도 무겁고 아픈 마음이 더 가라앉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너무 힘들 땐 책 읽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설책을 읽었다.
그러다 오프라 윈프리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흑인여성이고 방송을 하며 남에게 베풂을 실천하는 사람? 뭐 그 정도.
그렇게 우연히 읽게 된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책으로 인해
삶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가 아주 아주 많이 변했다.
놀라울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내용은 사실 책 한 권 전체 다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몇몇 부분만 인용하자면
-나는 확실히 안다. 우리 모두에게는 숨을 들이마신 후 신발을 벗어던지고 무대로 걸어 나와 춤출 기회가 매일 주어진다.
한 점 후회 없이 지칠 때까지 즐거움을 누리고 까르르 웃으며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 기회가 매일 온다.
...
바로 지금이 선택해야 할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가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당신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비본질적인 것들에 파묻혀 정말로 즐겁게 사는 것을 잊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은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신이 훗날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때, 당신이 매 순간을 소중히 보내기로 마음먹고 마치 지금이 내게 허락된 시간의 전부인 양 온 힘을 다해 즐기기로 결심한 날이 바로 오늘이라면 좋겠다. 그대로 자리에 머물 것인가, 무대에 나가서 춤출 것인가의 갈림길에 섰을 때, 당신이 춤을 춘다면 정말 좋겠다.
나는 누구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다.
물론 세상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너무나 힘든 결혼생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 상황을 이겨내고자 내가 묵묵히 버티는 것 말고는.
그런데 이 책은 내가 머물 것인지, 춤출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이 나에겐 힘든 일이 생겨도
부정적으로 살 것인가, 긍정적으로 살 것인가.
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당연히 춤을 출 것이다.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가 실제 1996년 10월 12일에 썼던 감사일기.
-1. 나를 시원하게 감싸주는 부드러운 바람을 받으며 플로리다의 피셔섬 주위를 달린 것
2. 햇빛을 받으며 벤치에 앉아 차가운 멜론을 먹은 것
3. 머리가 엄청나게 큰 남자를 소개받은 게일과 신이 나서 오랫동안 수다를 떤 것
4. 콘에 담긴 셔벗. 너무나 달콤해서 손가락까지 핥아먹음
5. 마야 안젤루가 새로 쓴 시를 전화로 들려주신 것
이 부분을 읽자마자 나는 정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살고 있는 나라만 다를 뿐 나의 일상에도 있는, 너무나 사소해서 지나쳐버리는 일들인데.
나는 곧바로 노트를 들었다.
감사 일기를 쓰려고 펜을 들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사실 그날은 너무 힘들어 갓난아이를 재우고 혼자 울던 날이었다.
펜을 들었는데 한 글자도 못쓰고 노트를 덮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쥐어짜 냈다.
1. 사랑스러운 ㅇㅇ이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2. 다리가 있어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3. 남편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는 것에 감사합니다.
4. 우리 가족이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쓰고 나서 보니
정말 억지로 감사하는 느낌...
오프라 윈프리가 쓴 것처럼 일상에 있는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혀. 아무것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긴 했는데 나의 오늘 하루에 소소하게 감사할 것이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써나갔다. 꾸준하게.
사실 처음 한 달은 내용이 거의 반복이었다.
특히 남편에 대해 감사할 부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하루는 육아, 육아, 육아, 청소, 청소.
내 일상은 너무나 단조로웠다.
그렇게 일기를 써나가던 어느 날.
아이와 거실에 함께 누워 옹알이에 대답하고 있었는데 문득 바라보게 된 거실 창 밖으로 하늘이 너무나 예뻤다.
휴대폰을 들어 메모했다.
1. 아이와 예쁜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2. 아이의 옹알이를 듣고 대답하고 같이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3. 아이와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오는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4. 술 마시고 무사히 들어온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감사일기를 써나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서 감사할 것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감사할 것들은 언제나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깨닫는 데에 시간이 걸렸을 뿐.
어느덧 감사일기를 쓴 지 7년째다.
이제는 그저 길가에 핀 예쁜 꽃만 보아도 감사하다.
출근길에 예쁜 꽃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주는 한 마디도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조언해 주는 것도
언제나 사랑을 표현해 주는 것도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는 것도
그리고 단단한 아스팔트와 시멘트 건물들 사이사이 힘겹게 피어난 꽃 한 송이도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내 인생의 어두컴컴한 터널들을 지날 때마다
그 터널 틈새에 자리 잡은 꽃 한 송이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감사일기의 힘이다.
나는 그래서 내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주저 않고 감사일기를 권한다.
물론 누군가에겐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머무를 것인가, 춤출 것인가는
그들의 선택이니까.
또 선택과는 별개로 내 소중한 사람들이
언제나 행복하길 바란다.
어쩌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감사할 일이
많이 많이 생겨났으면,
보다 많이 많이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