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9
나는 혼자 결심한 게 있었다.
이혼하는 마지막 날
법원에 가면 즐겁게 마무리 짓고 오자고.
우울하고 슬프게 기억되기 싫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제주도까지 가서 우울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의 마지막 기일은 월요일이었고, 당신의 생일이었다.
이제는 남편이 아닌 전남편이 될 당신의 생일.
법원에서 정해준 날짜는 두 개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 개의 날짜 중 당신의 생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당신의 생일을 골랐다.
당신이 살아가는 동안 매년 생일 때마다 떠올리고 가슴 아파하길 바랐다.
사실 내 생일과 8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나도 평생 잊지는 못할 테지만.
당신은 정작 아무렇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내가 가혹하다 생각했을지도.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라도 당신에게 벌을 주고 싶었나 보다.
이혼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여행하러 가는 길이고 싶었다.
길다면 길었던 나의 힘든 여행을 끝내는 길.
그래서 친구, 그리고 나의 보물인 아이도 함께 셋이서 제주도로 출발했다.
내 친구는 아이와 둘이 제주 여행처럼 다녀오려던 나에게 법원에 들어가게 되면 아이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그 부분만 걱정이 된다고 고민 중이라고 했더니
같이 가자고.
내가 법원에 가 있는 동안 아이를 대신 돌봐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셋이서 2박 3일 제주도로 이혼여행을 떠났다.
함께 해준 친구 덕에 슬프고 쓸쓸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첫째 날은 셋이 놀고
둘째 날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낮시간동안 친구랑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노래를 크게 틀고 드라이브를 하고 내가 제주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인 목장도 갔다.
친구 덕에 나의 결심대로 전혀 우울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 때문에 연차도 써가며 월요일에 쉬어준 친구.
고맙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이렇게 고마운 내 사람들에게 내가 언젠가는 꼭 보답할 수 있기를.
나는 그렇게 친구에게 아이를 맡기고
당신과 법원에 들어섰다.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꾸민 나를 보고는
여기 놀러 왔냐?
하는 당신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응 나는 놀러 왔어.
합의이혼하는데 걸린 1년 6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고대했던 우리의 마지막.
그렇게 제주지방법원에서 끝이 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간단했다.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우리는 이혼신고도 같이 하러 갔고
마지막이라 생각한 탓인지 미움도 증발해 버린 것처럼
티격태격하며 웃기도 하고
사이좋게 헤어졌다.
너무너무 홀가분했다.
그래서 이제 힘든 것도 다 끝난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