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7

by 도또리

그날 저녁, 당신에게 연락이 왔다.

휴대폰이 고장 났다는 것.

그래서 수리하느라 오지 못했다는 것.

뻔히 보이는 거짓말.

치가 떨렸다.


도대체가 좋게 헤어질 수는 없는 걸까

이혼에 좋게 헤어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걸까.


내가 제주도를 가겠다고 했다.

이제는 여기 오겠다는 너를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으니

제주지방법원에서 끝내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기일 불참으로 인해 다시 처음부터 합의이혼 절차를 밟아야 했다.

모든 것을 다시 할 생각을 하니 절망스러웠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껏 해야 이혼숙려기간 3개월일 테지만

이혼을 겪고 있는 중인 나에게는

3개월은 정말이지

지옥에 떨어져서 과연 나에게 어떤 벌이 내려질까 하며 불안하고 긴장되고 초조해서 1분 1초가 느리게 가는 것만큼이나 든 시간들이었다.


말 그대로 '합의'이혼이다 보니

두 사람 중 어느 하나가 마음이 변해서 이혼을 못해주겠다고 해버리면 정말 그때부터는 전쟁이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는 거였다.


나는 그게 무섭고 불안했다.

당신이 이혼을 못 해주겠다고 할까 봐.

그래서 나의 지옥 같은 시간이 자꾸만 연장될까 봐.


다음 날,

법원 두 곳에다 전화해서 사정을 얘기하고 어떻게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부탁을 드렸다.


바로 어제 합의이혼에 실패한 나의 절절함이 느껴졌는지 감사하게도 조금의 편의를 봐주셨다.

하지만 이혼숙려기간인 3개월의 시간은 다시 또 한 번 겪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직장에 더 이상은 내 개인적인 일로 피해를 주기는 싫어서 휴가 때 제주지방법원에 가기로 마음먹고서

시간을 보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덜너덜해진 내가 일과 육아만 행하 것 만으로도 벅차

어디에도 내 마음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시간들.


나의 소중한 보물인 아이 미소만큼은 켜주기 위해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각자의 상처를 돌 볼 시간조차 가지지 못한 채 서서히 곪아가고 있었다.


바보 같이

내가 제일 힘들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keyword
이전 17화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