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6
이혼숙려기간 동안 크고 작은
사소한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사소한 일만이라도 빨리 잊고 싶었던지라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기일이 다가왔다.
나는 처음 법원에 간 날, 그리고 마지막 날도 후줄근하게 보이기 싫었다.
네가 놓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외면이 아닌 내면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흘러야만 차차 본인이 깨닫게 되겠지만.
외면은 바로 눈에 보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법원에 갈 때마다 최대한 예쁘게 하고 갔다. 구두까지 신고서.
처음 법원 간 날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화사하게 노랑병아리처럼 입고 온 나를 보고.
법원에 이혼하러 온 많은 부부들의 칙칙한 옷 색깔 속에 혼자만 샛노란색이었다.
나에게 이혼은 슬픈 일이 아니라고
이 옷 색깔만큼이나 밝게 살 거라고.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 응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기일.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제일 바쁜 월요일이지만 휴무를 냈다.
법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심장이 솟구쳤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였다.
전화를 스무 통을 넘게 했지만 계속 꺼져있었다.
오지 않은 것이다.
제주도에서 출발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혼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혼과정에서조차도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제주도로 찾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 집주소를 몰랐다.
상간녀와 동거하고 있는 그 집주소를 알지 못했다.
분에 못 이겨서 눈물이 난 건, 내 인생 처음이었다.
어쩌지도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이혼을 안 해주면 어떡하나 무섭고 불안하기도 했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근무를 하려니
나를 말리며 집으로 가서 오늘은 좀 쉬라고 해주셨다.
나는 또 울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무책임한 건 저 사람인데
죄송해야 할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나는 그날 그렇게 또 무너졌다.
집으로 가
해맑게 놀고 있는 아이 옆에서
숨죽여 울기만 했다.
지긋지긋했던 결혼생활 중에도
그리고 이혼과정에서조차도
나를 피 말리는 당신을
할 수만 있다면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관계를 끝내고 싶었다.